[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3.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장. 3. 비차, 나는 수레
마침내 그들이 충청도 노성 땅으로 들어선 것은 고향을 떠난 지 두 달하고도 보름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물어물어 찾아간 윤달규의 집은 저 아래로 넓은 평지가 보이는 전망 좋은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다. 조운이 눈여겨보니 그곳 지형이 하늘을 날게 하는 기구를 만들어 실험하기에 제격이었다.

“이 사람을 찾아 경상도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어디라고? 진주? 내가 듣기에 그 고을은 기생이 유명하고 선비정신이 뛰어난 유림의 고장이라던데…….”

그집 사랑채에 마주 앉았을 때 윤달규가 맨 처음 꺼낸 말이 그랬다. 사십 대인지 오십 대인지 좀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남자였다. 눈빛도 끝 간 데를 짚을 수 없을 만큼 깊어 보였으며, 팔자주름은 없는 대신 엷은 주름살이 많이 간 이마에는 어쩐지 숱한 사연이 감춰져 있는 것 같았다. 그처럼 모든 게 신비로 감싸여 있는 분위기였다.

“예, 멀리서 왔습니다. 그러니 제발 비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조운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주 공손하게 큰절을 올렸다. 그러자 상돌도 얼른 조운과 같은 행동을 했다. 그는 그런 큰절에는 서툰 듯 자칫 방바닥에 처박힐 뻔했지만. 그런데 절도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윤달규가 대뜸 한다는 소리가 이랬다.

“아직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는가 보군 그래. 사람을 만나려면 먼저 그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보아야지.”

조운과 상돌은 무슨 말인지 몰라 무릎을 꿇은 채 눈을 크게 둥글렸다. 윤달규는 매우 못마땅한 눈으로 노려보듯 하며 입을 열었다.

“잘들 들으시게.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내 입을 열게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네.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상돌이 머리를 조아리며 간곡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든 시키시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윤달규는 병풍 쪽으로 싹 돌아앉으며 서릿발처럼 차갑게 내뱉었다.

“나라님이 와서 부탁해도 안 되는 일이네. 그러니 공연히 시간만 낭비하지 말고 그만 돌아들 가시게나.”

책 더미를 중심으로 문방사우 등을 그려 넣은 서권도(書卷圖)병풍이 그방 주인을 잘 말해주는 듯했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병풍은 누가 선물해도 내다버릴 성싶었다.

“저희 사정이 너무 급하고 딱합니다. 어지간하면 여기까지 왔……?”

“그건 댁들 사정이고,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 나 지금 몸이 많이 피곤하오. 좀 드러눕고 싶으니 그만들 일어나셨으면 좋겠소.”

보료 앞에 놓인 연상(硯床) 위에 올려놓은 벼루 하나가 조운의 눈에 들어왔다. 문갑과 서안을 겸용한 연상이었다. 나뭇결무늬의 소박미를 잘 살린 그것은 서랍의 무쇠고리 외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었다. 그방 주인은 잔정이 없는 무뚝뚝한 성격인 듯했다.

상돌도 더는 입을 열지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그곳까지 온 보람이 없다는 사실에 맥이 풀리는 모습이었다. 조운은 광녀 말을 떠올렸다. 나 연 한 개 더 만들어 줘. 히히히. 그랬다. 이럴 땐 미치광이처럼 굴 필요가 있었다. 조운은 그야말로 미친년 칼 물고 널뛴다는 식으로, 윤달규 옆에 있는 남의 장죽걸이를 부서져라 거칠게 끌어당기더니 주머니에서 짧은 담뱃대를 꺼내 거기 걸쳐 세우려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