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깨달음의 경지
<이준의 역학이야기> 깨달음의 경지
  • 경남일보
  • 승인 2014.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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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佛家)의 말로 ‘중생이 깨달으면 부처가 되고, 부처가 어리석으면 중생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부처는 깨달은 중생이요, 중생은 깨닫지 못한 부처라는 말이다. 이 깨달음에 관하여 많은 말들을 하고 있으나, 깨달음의 경지가 과연 어떤것인지에 대하여서는 제각기 말이 다르고, 깨달은 사람들의 오도송(悟道頌)을 읽어 보아도 도대체 알 수 없는 횡설수설뿐이다. 하여 과연 그런 깨달음의 경지가 실제로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깨닫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살이에게 매미가 ‘내일 다시 만나서 놀자’하니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가 ‘내일이 뭐지?’하며 매미를 미쳤다고 욕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의 경지를 체험하거나 알지 못한다고 하여서 깨달음의 경지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내일 만나자고 말하는 매미에게 욕설을 퍼붓는 하루살이와 다를 바 없다. 하여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모르기 때문에 깨달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들의 구도(求道)과정을 되짚어 봄으로써 비록 그림자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깨달음의 윤곽을 희미하게나마 더듬어 볼 수는 있다.

깨달았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름난 고승(高僧), 선사(禪師), 도학자(道學者), 각자(覺者)들의 일대기는 우리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기행(奇行)과 득도(得道)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의 일대기는 우리가 이들의 깨달음을 직접 체험하거나 친견하거나 감화의 경험 없이 그저 말로서만 전해 듣는 이야기이고 전설(傳說)일 뿐이지만, 그저 듣기만 하여도 신비하고 재미있고 기이(奇異)하고 감탄스럽기만 하다.

이들은 대개 인생의 어떤 과정에서 구도의 길을 걷게 된다. 마음속에 저절로 떠오른 화두(話頭),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집안의 사건, 인생에서의 허탈함, 스승의 권유 등 다양한 이유에서 인생의 궁극적 의미, 또는 존재와 삶 자체를 분명하게 알기 위하여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견뎌 내기 어려운 고행(苦行)의 길을 떠난다. 스스로 토굴(土窟)을 파고 들어가 갇힌다든지, 장좌불와(長座不臥)한다든지, 손가락을 태운다든지(燃指·모든 욕심의 말초신경인 손가락을 태우기), 거지모습으로 다닌다든지, 일부러 세인(世人)들에게서 욕먹을 짓만 골라한다든지 하는 기행(奇行)을 보인다. 오랜 고행의 기간이 소요된다. 그런 오랜 기행 끝에 깨달음의 경지에 든다. 설산에서 구도에 증진한 석가모니나 사막에서의 유혹을 극복한 예수처럼 깨달음에 다다른 구도자들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지극한 한계를 초극(超克)한다.

이런 깨달음의 경지에 든 사람들은 대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첫째, 덩실덩실 춤을 춘다. 깨달음의 순간 저절로 덩실덩실 춤이 나온다. 인의(仁義)를 추구하는 유가에서의 깨달음에 대한 경지를 맹자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맹자(孟子) 이루상(離婁上) 27에 나오는 말이다. ‘인(仁)의 실상은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며, 의(義)의 실상은 형을 따르는 것으로…인의(仁義)를 실천하는 이러한 경지를 즐거워하며…더 이상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르면 발은 저절로 뛰게 되고 손은 춤을 추게 된다.(惡可已則不知 足之蹈之 手之舞之)’ 깨달으면 손발이 저절로 움직여 춤을 추게 되는 모양이다.

둘째, 자기도 모르는 사이 깨달음의 소리인 오도송(悟道頌)을 내기도 한다.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른다거나 벅찬 고함을 내지른다. 셋째, 온몸에서 밝은 빛의 광채(光彩)가 난다. 생체에너지인 오로라 현상이 저절로 일어난다. 밤에 불이라도 났는가 싶을 정도로 밝은 빛이 휘몰아쳐 온 산을 빛나게 한다든지 한다.

넷째,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단박에 그의 모든 인생을 한눈으로 알아본다. 이들의 말대로 하면 저절로 복을 받고 행복에 이르게 된다. 다섯째, 국가의 미래를 훤하게 꿰뚫는다든지 하는 기이하고 신비한 예언을 하기도 한다. 여섯째, 사나운 뭇짐승과 벌레들이 가만히 순응하고 따른다든지 하는 일화가 반드시 있다. 일곱째, 그 어느 누구의 개념에 물들지 않는 자기 삶에 대한 확신으로 아름다운 인생의 모습과 기적 같은 일들을 행한다.

그렇지만 깨달은 이들의 삶은 극히 단조롭고 평범하다. 이들은 결코 자기존재의 대단함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르지 감사와 봉사의 삶의 자세만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개 성인(聖人)들로 추앙받는 이들은 깨달음의 경지에 들었거나 그렇게 깨달으며 살다간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사주팔자를 펼치기 전에 스스로 깨닫는다는 자세를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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