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8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8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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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3. 비차의 노래
조운의 비차 제작 장소인 분지 위로 찬연한 아침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그 공터의 좌우와 뒤편을 빙 에워싸고 있는 야트막한 능선의 빛은 푸르렀고, 비차 작업장 근처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도 한결 신선하고 생기에 차 보이는 아침나절이었다. 인간들은 어떻게 바뀌든 자연이 이루어내는 새로운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게 밝고 빛나는 얼굴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새날의 빛살 속에서도 조운의 표정만은 여전히 어둡고 무겁기만 했다. 잠을 설친 그의 얼굴은 너무나 까칠하고 눈에는 생기가 없어 보였다.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으며, 다리도 보기 민망할 정도로 후들거리고 있는 게 햇살 속에 똑똑히 보였다.

그런 모습으로 조운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비차 앞에 서서 그것을 무연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그림자는 비차 쪽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비차 그림자는 그의 그림자를 멀리하려는 것처럼 비차 몸체 뒤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조운은 마지막 점검하듯 새로 완성시킨 비차를 찬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남강변 대밭에서 베어온 대나무를 재료로 하여 만든 격자구조의 뼈대, 가볍고 질긴 무명천으로 만든 날개, 비차의 몸통을 우아하고 깨끗하게 보이게 하는 화선지, 뼈대와 날개 등을 튼튼하게 묶은 마끈, 빠져 달아나지 않게 단단히 박아놓은 소나무 바퀴, 솜뭉치를 넣어 만든 작고 둥근 머리, …….

나는 수레, 비차. 하지만 그것은 말이나 소가 끄는 수레보다도 새나 가오리를 더 많이 닮아 있었다. 직접 그것을 만든 조운뿐만 아니라 누구 눈에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따오기? 아니면 고니? 아니면 또 다른 새? 이도저도 아닌 가오리?

그런데 새라면 당연히 날아야 하지 않겠는가, 날아야……. 하지만 날지 않는, 날지 못하는 새였다. 조물주처럼 생명을 불어넣지 못한 탓에 살아 있지 못한 새, 죽은 새.

조운은 죽고 싶었다. 아니다. 이미 죽은 몸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비차. 그러나 실패였다. 완벽한 실패. 이제 다른 길은 없었다. 포기밖에는. 포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끝났다. 비차도 끝났고 강조운도 끝났다. 비차와 함께 죽으리라. 비차에 올라앉아 몸에 불을 붙일 것이다. 그리하여 비차와 더불어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러면 재가 되고 연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아아. 죽는 그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나 강조운의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됐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나 강조운은 하늘이 내리신 운명을 거스르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비차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으니까. 내가 구해야 할 귀인? 웃기는 소리 마라.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미친 소리? 모두가 마귀의 장난이었을 뿐이야. 결국 이렇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지.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 시치미를 똑 따고 있었던 거지.

그런데 조운이 막 비차에 오르려고 할 그때였다. 어떤 손이 너무나 센 힘으로 등을 탁 치는 바람에 그는 자칫 비차에 코를 처박고 앞으로 꼬꾸라질 뻔했다. 뒤미처 그 손 임자가 내는 웃음소리, 히히히.

그러나 조운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앞을 보든 뒤를 보든 옆을 보든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 어디를 봐도 죽음의 길만이 나 있을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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