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8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8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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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3. 비차의 노래
광녀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말이 실로 맹랑했다.

“놀러 가자.”

조운은 황망한 중에도 어이가 없고 화부터 났다. 놀러 가자니. 세상에, 미친년이 나더러 놀러 가자고? 지금 내가 어디 놀러나 다닐 수 있는 편해 자빠진 처지인가. 그것도 미친년하고. 하지만 광녀는 또 말해왔다.

“우리 같이 놀러 가.”

조운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돌려지듯 목뼈가 소리를 낼 만큼 뒤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고는 분노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꽥 고함을 질렀다.

“미친 소리 그만 햇!”

미친 사람은 조운 자신이었다. 미친 여자에게 미친 소리 그만 하라니. 광녀도 처음에는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고막이라도 터지는 줄 알았던 걸까. 하지만 그것은 극히 순간이었다. 광녀는 사내를 호리려는 요부처럼 눈웃음을 살살 치고 몸을 배배 꼬면서 말했다.

“우리 빨리 놀러 가자. 저기 놀러 가자.”

“이게 정말?”

급기야 조운은 이성을 잃어버렸다. 그러잖아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는 광녀를 향해 때려죽일 것같이 소리쳤다.

“저리 안 가? 죽고 싶어?”

그런데 광녀는 한 술 더 떴다. 언제 뻗쳤는지도 모를 손으로 조운의 팔을 잡아끌면서 이랬던 것이다.

“저기 참 좋다. 저기 가보자.”

조운은 흡사 징그러운 벌레 떨어내듯 광녀 손을 강하게 뿌리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니나 가라! 나는 이 비차를 날려야 해!”

그렇게 내뱉고 난 조운은 스스로 돌아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광녀에게 비차를 날려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꺼내다니.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자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일지라도 그런 소리를 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광녀는 조운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비, 비차?”

그러면서 광녀는 거기 비차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노랗게 번득이는 눈빛-그것은 영락없는 광인의 눈빛이었다.

조운은 문득 위기를 느꼈다. 광녀가 금방이라도 비차에 달려들어 부숴버리고 말 것 같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손으로 불살라버리려고 했던 비차였는데 이건 또 무슨 조화속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조운은 두 팔을 벌리고 광녀 앞을 막아섰는데 그게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광녀는 더욱 비차에 흥미와 관심을 느끼는 눈치였다. 그녀는 비차를 향해 다가갈 것같이 하며 아주 갖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비, 비차. 비, 비차…….”

조운은 머리털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 말이 왜 그렇게도 귀에 거슬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신경이 날카로울 대로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이긴 했다. 버럭 고함을 쳤다.

“비, 비차가 아니고 비차!”

어쩌면 조운 또한 점점 미쳐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미친 여자를 상대로 그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렇지만 광녀의 반응은 또 놀라웠다. 그녀는 아주 또렷한 어조로 말했던 것이다. 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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