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공 정기룡 장군 향례 봉행
충의공 정기룡 장군 향례 봉행
  • 여명식
  • 승인 201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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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60전 60승의 전과를 올려서 ‘육전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충의공(忠毅公)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기일(음력 2월 28일)을 추모하는 향례가 지난 28일 오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경충사 사당에서 봉행됐다.

향례는 경충사유지관리위원회(위원장 정한효) 주관으로 진설·분향·폐백에 이어 진양정씨 문중 정재화씨가 초헌관, 변해영 육군 제 8962부대 5대대장이 아헌관, 문병조 농협 하동군지부장이 종헌관을 맡아 각각 헌작하고 장군의 위업을 기렸다.

금오산 자락의 정기룡 장군 유허지에 있는 경충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맛배지붕형 사당으로서 장군의 위패와 반신상 영정이 봉안돼 있다.

당초 일제 강점기인 1928년 지방 유림들의 발의로 창건된 경충사는 민족의식의 확산을 우려한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유품이 압수되는 등 고난을 겪기도 했으나 1966년 장군의 위패가 다시 봉안됐다.

정기룡 장군은 1562년 4월 24일 금남면 중평리에서 출생해 1580년(선조 13년) 고성에서 향시에 합격하고 25세 때인 1586년 무과에 급제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거창·금산 등지에서 왜적을 물리친 공로로 상주판관이 됐고, 다시 승전을 거둬 상주목사 겸 검사군대장이 됐다.

이어 1597년 정유재란 때는 금오산성을 지키고 경북 고령에서 대승을 거둬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승진했으며 그동안 60여 회의 전투에서 승리해 ‘바다에는 충무공 이순신, 육지에는 충의공 정기룡’이라 일컬을 정도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후 경주·울산 등을 되찾아 삼도군통제사 겸 경상우도절도사에 올랐다가 1622년 통영의 진중에서 순직했으며, 당초 이름은 무수였으나 선조가 ‘일어난 용과 같다’해서 기룡(起龍)이란 이름을 내렸다.

정기룡 장군 경충사에서 향례.
정기룡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기일을 추모하는 향례가 지난 28일 경충사에서 봉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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