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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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뉴스
  • 승인 201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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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김찬호 신간 '모멸감: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 1. 1927년 여름 충북 청주에 사는 양반집 며느리 최씨가 자살했다. 최씨는 자신의 딸이 같은 동네 사는 김씨의 딸과 말다툼을 하고 들어오자 “상년의 딸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고, 이 말을 건네 들은 김씨는 최씨에게 따졌다. 최씨는 ‘상년’에게 치욕을 당해 살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 2.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20대 여성 A는 손님들로부터 생전 겪어보지 못한 수모를 종종 경험한다. 이는 A뿐만 아니라 다른 아르바이트생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수모를 당하고서 씩씩거리며 똑같은 말을 내뱉는다. “난 레스토랑에서 시중이나 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 3. B와 친구는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성들과 함께 술을 마시게 된다. 술을 마시던 중 친구가 갑자기 B의 가발을 벗겨 바닥에 던진다. 망신을 당한 B는 화를 누르지 못해 인근 포장마차에서 흉기를 가져와 친구를 살해한다.


나의 존재가 부정당하거나 낮춰질 때 드는 괴로운 감정인 모멸감은 자살, 살인, 자기 부정 등의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안타깝게도 모멸감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경험하는 감정 중 하나다.

신간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은 낮은 자존감이 한국을 모멸감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하고, 결국 타인에 대한 모욕·경멸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한다.

사회학자인 저자 김찬호는 우리의 삶에 만연한 모멸감의 실체를 분석하고,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프리즘 삼아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조명한다. 인간을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수치심의 촉발제로 모욕을 개념 짓고, 모멸감이 만연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모멸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두려움, 분노, 슬픔, 불안 등 다른 감정에 대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모멸감에 대한 선행연구가 그동안 없었다는 점이 놀랍다. 그런 면에서 책은 한국인의 일상에 만연한 모멸감의 실체를 인문학적으로는 처음으로 규명한다. 저자는 감정은 사회 상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며,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사회적인 지평에서 분석하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에 형성된 귀천의식과 신분적 우열 관념이 산업사회와 소비주의의 경쟁으로 이어지고, 다른 문화에 공격적인 민주주의와 편협한 인종주의로 드러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결국 나의 언행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지 않는지 헤아리는 감수성이 사회에 자리 잡아야만 모욕을 주고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문학작품에서 수집한 실례와 일상생활의 에피소드가 적절히 버무려졌다. 또 작곡가 유주환 씨가 책을 읽고 작곡한 10개의 곡을 CD에 수록해 서적과 음악의 만남을 추구한다.

문학과지성사. 324쪽. 1만3500원.

모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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