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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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1. 길을 빌려 달라
여기는 경상우도 가덕진의 응봉봉수대.

다대포와 서평포진을 굽어보며 낙동강 하구 일대와 몰운대 앞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쾌청한 날에는 거제도 연안과 대마도까지 감시할 수 있다고 알려진 군사적 요충지이다. 도별장(都別將) 1인을 두고, 그 밑에 별장(別將) 6인을 두었으며, 감고(監考)는 1인, 봉군(烽軍)은 100명이 배치돼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큰 소요가 일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대선단이오. 대략 봐도 90척은 넘을 것 같지 않소이까?”

응봉의 봉수대 책임자인 감고 이등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추이도를 지나 부산포로 향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 뒤쪽을 보십시오. 왜선들이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잖습니까?”

연대감고 서건의 몸과 음성이 함께 떨렸다. 그 밖의 다른 봉군들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곳 아미산의 산신령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저 군기(軍旗)는 또 뭡니까? 괴상망측한 게 영 기분이 나쁩니다.”

“내 눈에는 허연 해골과 벌건 핏물이 보이는 것 같소이다. 에이!”

붉은 비단 장막에 하얀색 십자가가 그려진 소서행장 부대 군기는 조선군들 눈에는 무척 이물스러웠다. 독실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도인 소서행장은 그런 특이하달까 하여튼 야릇한 느낌을 주는 군기를 사용했던 것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진중에는 스페인 출신의 로마 가톨릭 교회 신부인 세스페데스 신부가 사목(司牧)했다. 조선 땅을 밟은 최초의 천주교 성직자이자 조일전쟁을 목격한 유일한 서양인으로 전해지기도 하는 세스페데스. 종군신부의 자격으로 와서 경상도 일대의 해안지방에 약 1년간 머물면서 조선인에 대한 선교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 당시 상황에 대한 4통의 서간문을 남기기도 한다.

소서행장은 세스페데스 신부더러 밤마다 미사를 올리도록 하자고 말했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물론 휘하 병사들도 좋아했다. 그들도 로마 가톨릭 교회 신도들이었던 것이다. 소서행장 봉토였던 아마쿠사 제도는‘그리스도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였으니 당연했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그런 각별한 미사의 집전자로서 무슨 색깔의 제의(祭衣)를 착용할 생각을 했을까? 장차 엄청나게 생길 수밖에 없는 일본인과 조선인 망자(亡者)들을 위해, 죽음을 뜻하는 흑색 대신 슬픔과 속죄를 뜻하는 자색 제의는 어땠을까?

어쨌든 왜군을 예의 주시하던 조선군 사이에서 이런 말들이 나왔다.

“어서 가서 위에 고합시다.”

“그럽시다. 심상치가 않소이다.”

보고를 받은 가덕진 첨절제사 전응린과 천성보 만호 황정도 놀라 상부에 대한 긴급 보고를 서둘렀다. 조선에서 내왕을 허락해준 일본 세견선(무역선)이 아니라 전함이라지 않은가? 왜선들이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바람에 조선 물새와 물고기들이 날고 떠다닐 공간조차 없어질 판국이었다.

“봉화를 피워 올리시오. 하루 정도면 한양까지 전해질 것이오.”

동쪽으로는 구봉, 서쪽으로는 성화 예산봉수대로 연결되는 응봉봉수대였다. 그리하여 해가 지기 전에 최종지인 한양 남산봉수대에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를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봉화로 연결되는 비상연락망이 중간에 끊어져버렸다. 조정에서 일본군 침략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흘 후에 경상좌수사 박홍이 올린 장계를 통해서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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