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4.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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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자의 개척자 존 템플턴
존 템플턴(John M. Templeton)은 1912년 미국 테네시 주의 작은 마을 윈체스터(Winchester)에서 태어났다. 도시 외곽에서 자란 템플턴은 외국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해외 선교사로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자신도 언젠가 선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기도 하였다. 예일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로즈 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로 가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강점과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1937년 25세의 나이로 월스트리트로 가 기업 가치가 낮게 평가 된 주식들만 골라내는 뛰어난 안목으로 주목을 받았고, 1954년에는 투자 회사 ‘Templeton Growth Ltd.’를 설립했다. 그는 국제투자의 개척자이자 뮤추얼펀드의 선구자였다.

템플턴은 젊은 시절 세계를 여행하면서 가능성 있는 세계에 투자해야겠다고 마음 먹고는 뮤추얼 펀드를 전 세계로 확장시키면서 억만 장자가 되었다. 2차 대전 발발 직후 주가가 1달러 미만으로 폭락한 종목 104개를 매입하여 4배가 넘는 수익을 거둔 이래 이 같은 원칙은 ‘템플턴 신화’를 만들어온 동력이 되었다. 그는 1960년대 중반에 이미 일본에도 투자한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6년에는 선데이 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부자들 가운데 129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리고 2007년에 템플턴은 타임지가 선정한 최고의 기부자(Power Givers) 부문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평소에 “가장 성공적인 투자자는 인류에 최대의 발전과 번영, 정신적 부를 안겨주는 사람이다”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투자 철학 속에는 ‘인류’와 ‘영혼’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두고 ‘영혼이 있는 투자자’로 부른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뛰어난 족적을 남긴 위대한 투자자는 많았지만, 도덕성과 인격으로 생존 시에 이미 ‘신화’로 추앙받았던 인물은 템플턴 이전에도 이후에도 찾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지는 그를 가리켜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명멸하는 분야에서 진정으로 위대한 족적을 남긴 몇 안 되는 투자가 중의 한명”이라고 했다.

그는 위대한 투자가이기도 했지만, 평생을 장로교 교인으로 살면서 프린스턴 신학교의 이사를 42년 간 역임하기도 하였다. 30년 동안 템플턴 그로스 펀드의 이사회를 기도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투자 금언 22가지 가운데 맨 마지막은 “기도와 함께 시작한다면 보다 명확한 사고를 하고 멍청한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이다. 한편 1972년 존 템플턴은 노벨상에 종교 부문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존 템플턴 재단을 설립하고 기금 3만 4000파운드를 내놓으면서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Templeton Prize)을 제정하였다. 매년 종교 분야에서 인류를 위해 크게 이바지한 인물들에게 시상한다. 노벨상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금이 수여되는 상으로, 140만 달러 이상의 상금이 주어진다. 1973년 제1회 수상자는 테레사 수녀였고 한국인으로는 1992년 고 한경직 목사가 수상한 바 있다. 이 템플턴 상은 기독교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다양한 종교 분야에서 영적인 탐구와 진보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수여되어 왔다. 1987년에는 존 템플턴 재단에 15억 달러를 출연하여 물리학, 우주과학, 생물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등 투자 이외의 사회봉사활동으로 존경받아왔다. 그는 살아생전에 매년 40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해 왔다. 그는 1987년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에 힘쓴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기사작위를 받기도 했다. 그는 미국에서 부과하는 소득세 납부를 피하려고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영국 시민권과 바하마 국적을 동시에 취득하였다. ‘월가의 신화’로 불리던 템플턴이었지만, 정작 그는 1968년에 월가를 떠나 카리브해안의 바하마 군도에 자리를 잡았고 죽을 때까지 바하마의 평화로운 해변에서 살았다. 그의 삶은 근검절약이 생활화 되어 있어서, 승용차를 손수 운전하는 가하면 항공기를 이용할 때에도 일등석에 앉는 법이 없었다. 2008년 여름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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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템플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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