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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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1. 길을 빌려 달라
급히 부산진성으로 돌아온 정발은 경상좌수영 박홍에게 보고했고, 박홍은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보고하여 경상좌도는 전시상황으로 돌입했다. 정발은 부사맹 이정헌과 함께 군사를 정비해보다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법제상 부산포 병력은 500명 정도였으므로 백성까지 합해도 1천 명이 채 못 되었다.

정발은 소서행장의 명을 받은 종의지와 마주보고 앉았다.

“우리 목적은 조선 정벌이 아니오. 명나라를 치는 것이오. 그러니 길만 빌려주면 얌전히 지나가겠소이다.”

소위 가도입명(假道入明)을 내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터, 장군께서는 기꺼이 협조해 주시리라 믿소.”

잠자코 듣고 있던 정발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일개 첨사에 지나지 않는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오. 그리고 국왕 전하의 어떤 통과명령도 없었으니 불가하오.”

종의지는 발끈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오. 고니시 장군은 사사로이는 이 사람 장인이시오. 장인은 이전부터 여러 차례 귀국 조정에 전쟁 위험을 알리는 노력을 해왔고, 본국 내에서는 전쟁을 막으려는 비둘기파(반전파)에 속하는 장수요. 그런데도…….”

정발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네들은 이미 아무런 통고도 없이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나라에 발을 들여놓았소. 이게 전쟁선포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협상은 결렬되었다. 빈손으로 돌아온 종의지에게 소서행장은,

“어쩔 수 없네. 가등청정이 이끄는 2군과 흑전장정의 3군이 상륙을 기다리고 있으니, 나 혼자 힘으로 더는 전투를 늦출 수가 없어. 내일 새벽 출격한다!”

왜군 선단이 부산진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그날 밤은, 왜군에게도 조선군에게도 지옥의 시간이었다. 전운이 먹구름처럼 감돌았다. 정발은 박홍에게 건의했다.

“야습을 했으면 합니다.”

“야습을? 우리 쪽에서 먼저 공격을 하자는 것이오?”

박홍은 귀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정발은 자신감을 엿보였다.

“저들은 긴 시간 배를 타고 오느라 많이 지쳐 있을 것입니다.”

“자칫 판단을 잘못하면 아군의 희생이 어떠할지 생각이나 해봤소?”

“이국에서의 첫날밤이니 불안하고 향수에 젖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수적으로 이렇게 열세인데 어떻게 나아가 싸운단 말이오? 성 안에서 지킴만 못할 것이니 그렇게 아시오.”

박홍 앞을 물러나온 정발은 별을 올려다보며 탄식하기를,

“첫 전투의 기선을 누가 먼저 잡느냐가 중요하거늘…….”

별똥별 하나가 어두운 바다 속으로 처박히고 있었다. 한탄하던 정발은 부하들에게 성을 지키기 위한 철저한 명을 내렸다.

“왜군 보병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 앞에 마름쇠를 많이 깔아라. 모든 병사들은 철모와 갑옷, 총통류의 개인화기로 무장케 하라. 적재적소에 대포를 설치할 것이며…….”

바닷바람이 사나운 짐승처럼 갈기를 세우고 사람에게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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