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열풍에 반기 드는 현실과 마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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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뉴스
  • 승인 2014.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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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철학에세이 ‘분노사회’ 출간






언제부터인가 자기계발서나 ‘힐링’ 열풍에 반기를 드는 책이 속속 출간되기 시작했다. 이런 책들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자기계발서의 외침, 공감과 위로로 삶의 고통을 치유한다는 식의 힐링은 고통의 본질을 짚어내지 못하거나 읽는 이에게 허상을 주입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반(反) 자기계발서’들의 전선은 뚜렷한 편이다. 현대사회의 인간이 직면한 고통의 원인이 ‘외부’에 존재한다는 논리다. 그 외부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노동 착취나 민주주의의 비정상적 작동 등으로 다양하지만, 그처럼 불합리한 ‘외부’가 교묘하게 은폐되면서 개인이 고통의 본질을 찾지 못한다는 정도로 요약된다.

물론 이른바 ‘반 자기계발서’들도 이처럼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는 데 개인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경우 개인의 각성이란 자신의 외부가 잘못됐다는 사실에 대한 뚜렷한 인식, 더불어 외부의 거대한 힘에 맞서기 위한 개인들의 연대의식 함양에 주로 초점이 맞춰진다.

‘청춘인문학’ ‘삶으로부터의 혁명’ 등 여러 대중적 인문학 서적을 펴낸 정지우의 문제의식은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꽤 과감하다. 신간 ‘분노사회’에서 그는 현대의 한국인을 분노하게 하는 원인이 개인 외부에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의미에서 개인의 각성을 주문한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왔던 자본주의, 세계화, 국제관계, 금융, 역사, 권력, 전쟁 등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서 우리로부터 세계를 앗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참여해서 그 논리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순간 우리 역시 공범이 되었다는 사실을 면죄해주지 않는다.”(84~85쪽)

저자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증오와 상실만이 넘쳐나는 분노사회’로 규정한다. 그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분노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개인 하나하나에 의해 지탱된다”고 보는 그는 자신의 삶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내버린 개인의 이기적 분노에까지 우호적 시선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 개인은 자기 정체성을 정립한 존재로서 살기를 포기한 채 집단 정체성에 자신을 내맡기고 집단과 개인의 이기심만을 축적하는 존재다. 이들은 “사회의 특수계층에 특권과 책임을 몰아주는 계급사회로의 퇴행을 갈망하고,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사회 대신 통제되고 강요받는 삶을 갈구하는” ‘노예’일 뿐이다.

같은 관점에서 저자는 지식인들에게도 날을 세운다. 그는 지식인들이 개인을 ‘그저 순진한 마음을 간직한 채 피해를 본 사회와 권력층의 희생양’으로 여긴다면서 그들이 “민중의 편, 대중의 편, 시민의 편을 자처하면서 개인들에게 의무와 책임을 말하기보다는 면죄부를 발급하기에 바쁘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부패와 부정에 대한 공적인 분노, 정당한 저항, 합리적 실천은 자유를 갈망하며 책임을 감수하는 개인들로부터만 시작될 수 있다”며 책임의식을 띤 ‘진정한 개인’의 회복을 주문한다. 제도와 현실정치의 문제 역시 그런 개인들이 전제될 때 합리적 형태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당한 관념을 보유하고 자기 삶에서부터 사회에 대한 판단까지 일관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개인들이 구성원인 사회는 누구도 쉽게 무너뜨리지 못한다. 그러나 개인들이 자기의 이기심과 탐욕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책임을 강요하려고 할 때, 그런 개인들이 사회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사회 모든 곳이 삐걱거리게 된다.”(187쪽)

이경. 200쪽. 1만1000원.

분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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