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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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3. 미친 밤의 저주
광녀의 광기는 도무지 그 끝을 몰랐다. 달도 질려버렸는지 창호지를 비추는 달빛이 그렇게 창백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날이 샐 때까지, 아니 영원히 저렇게 미쳐 날뛰다가 숨이 끊어져야 그 짓을 멈추지 않을까 싶었다.

“흐…….”

이불 속에서 둘님이 신음 같기도 하고 분노나 울음 같기도 한 묘한 소리를 내었다. 조운은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집 밖에서 설치던 광녀가 어느 틈에 집 안으로 들어와 그들 부부의 이불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급기야 둘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걸까. 홀연 이불을 둘러쓴 채 방바닥을 마구 구르기 시작했다. 이불이 일으키는 세찬 바람에 등잔불이 금방이라도 ‘깜빡’ 하고 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위험하게 제멋대로 흔들리는 그 불꽃에서 조운은 보았다.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한 비차가 엄청난 충격을 받아 폭발음을 내면서 화염에 싸여 불타고 있는 광경을. 비차에 타고 있던 그 자신의 몸도 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우우! 카아! 히히! 흑흑!”

광녀의 날뜀은 갈수록 커져갔고, 둘님의 몸부림은 갈수록 심해졌다. 조운은 비차에 올라탔다. 비차의 배를 두드리니 지금까지는 꿈쩍도 않던 비차가 거짓말같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좁은 방 안이 드넓은 벌판이 되면서 높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인공의 새, 수레가 날았다. 대나무 몸체는 튼튼했고, 무명천 날개는 우아했으며, 화선지 피부는 눈부셨고, 솜뭉치 머리는 우뚝했으며, 소나무 바퀴는 단단했다.

조운은 날고 날고 또 날았다. 그의 옆에서 같이 날고 있는 다른 것들이 보였다. 새와 연이었다. 새가 연 위에 앉기도 하고, 연이 새 위에 앉기도 했다. 새는 종달새였다. 연은 방패연이었다. 종달새 얼굴은, 둘님이었다. 한데? 종달새 가슴은, 광녀였다.

‘으아아아아…….’

조운은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비차가 공중분해 되기 시작했다. 대나무 몸체는 망가지고, 무명천 날개는 부러지고, 화선지 피부는 찢어지고, 솜뭉치 머리는 너덜거리고, 소나무 바퀴는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몸도 비차에서 떨어져 나간 일부분이었다.

마침내 조운은 지상에 거꾸로 처박혔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의 몸뚱어리는 비차 잔해 속에 섞여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그 속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그런데 무언가가 머리 위로 덮쳐오는 바람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부피도 많고 무게도 꽤 나가는 물체였다.

‘헉! 이, 이건……?’

조운은 번쩍 정신이 났다. 그곳은 다시 그의 방 안이었다. 그리고 이불이었다. 둘님이 자기 몸을 말았던 이불을 들어 그에게로 내던졌던 것이다. 평소 둘님은 그렇게 기운이 센 편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남자도 그 큰 이불을 집어던지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결국 둘님을 지배하는 것은 둘님 그녀가 아니었다. 광녀였던 것이다. 그 매섭게 추웠던 날 밤, 가마못 가에서 조운을 끌어안고 꼼짝 못 하게 하던 무서운 완력의 여자, 광녀.

그 광녀가 지금 집 밖에서 광란의 춤과 노래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악령에게 지배당한 처절무비하고 가련한 여자였다. 더럽고도 질긴 남녀 간의 본능적인 애욕-성애의 포로가 된 여자. 그 포로의 포로가 돼버린 그들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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