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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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3. 미친 밤의 저주
그러나 조운은 광녀를 욕할 수도 멀리 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그녀를 그렇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자신이라는 깨달음이나 죄의식 때문에서만은 아니었다. 그러면 무엇인가? 그 배경에는 비차, 바로 저 비차가 있었다.

그랬다. 비차를 향한 조운 자신의 광적인 집착과, 그를 향한 광녀의 광적인 집착, 그 두 개는 결코 다르지 않다는, 어떻게 보면 실로 어처구니없는 어떤 ‘동류의식’이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둘님에게는 치명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그런데 조운이 머리에 둘러쓴 이불을 막 벗겨내었을 때였다. 둘님이 손가락으로 방문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친 것은.

“나가요! 나가보라고요! 당신을 찾아왔잖아요?”

조운은 또다시 한없이 추락하는 비차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 비차에 타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충격까지는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둘님은 어떻게 나왔던가. 광녀가 와서 그런 짓을 할 때 조운이 일어나 나가보려고 하면,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둘님이 그 순간에는 기겁을 하며 이랬다.

“나, 나가지 말아욧!”

그럴 때 둘님은 조운이 방만 나가면 광녀의 남자가 되고 말 것 같은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같이 비쳤다. 그리고 그런 둘님이 조운은 처음으로 싫었다. 남편을 믿지 못하는 아내, 그런 모습의 여자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던 둘님이 이제는 또 어서 나가보지 않는다고 하다니. 나를 시험해 보려는 걸까? 그런 의혹도 솟았지만 평소 둘님의 성격이나 지금의 태도로 보아서는 그런 계산속이 깔려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운은 나가보기로 작정했다. 이날따라 광녀의 광기는 좀 더 심했고, 무엇보다 그대로 두는 건 잠도 자지 못하고 불안에 떨고 있을 이웃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맺은 자가 푸는 법이라고, 어쨌든 광녀를 진정시켜야 할 사람은 그 자신인 데다가,

“비겁하군요. 그렇게 비겁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둘님의 그 말은 조운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내 눈에 비겁한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 그보다는 차라리 광녀와 놀아나는 놈팡이가 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조운은 방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갔다. 밤기운이 바짓가랑이를 타고 올라왔다. 어둠이 거대한 날개를 쫙 펼쳐 세상을 덮고 있었다. 그 속으로 비차가 날아오르는 장면이 보이는 듯했다. 순간, 모든 게 부질없다는 허탈감이 밀려들었다. 비차라는 허깨비만 쫓아다닌 날들이 아깝고 한심했다. 드디어 내가 미쳤다. 조운은 생각했다. 미친 여자를 만나려면 미친 남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러나 조운의 그런 어설픈 감상 따윈 한갓 사치나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드디어 마루에 나와 선 조운을 담장 너머로 발견한 광녀가 더 이상 그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어느 누구든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 광녀가 보인 반응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열광? 혼절 직전?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니다. 다 상관없었다. 광녀가 이런 소리를 내지르지만 않았다면.

“나 연 한 개 더 만들어 줘.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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