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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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3. 미친 밤의 저주
차라리, 하고 조운은 참담한 심정으로 생각했다. 나, 너 각시 되고 싶어. 너, 나 신랑 안 될래? 그런 말을 했다면. 뽀얀 젖가슴을 드러내 보이며 젖 먹으라고 했으면. 광녀는 왜 그런 말을 하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걸까.

연 한 개 더 만들어 달라는 소리는 결코 미친 여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얘기였다. 그 따위 부탁 하나 하려고 이 깊은 밤중에 남의 집 밖에 와서 온 동리 사람들이 잠도 잘 수 없게 만드는 저런 발광을 피우고 있단 말인가? 광녀라면 진짜 광녀답게 놀아야지 반풍수 같은, 어릿광대 같은 저런 모습은 싫다. 정말 싫다. 더, 더 미쳐버려라, 이 여자야.

조운의 그런 미친(?) 감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는 비차 제작에 실패하는 원인이 그것에 완전히 미치지 못한 탓이라고 보았다. 철저히 미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이 비차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미쳐야 하는 것이다. 최고의 미치광이가 되리라. 그것이 조운으로 하여금 남들이 광녀를 보는 것과는 다르게 보도록 이끄는 바탕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친 것은 광녀가 아니라 세상이다.

조운은 점점 미쳐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운을 본 광녀는 그날 밤처럼 또 야생마로 변했다. 지층이 쿵쿵 울리도록 팔짝팔짝 날뛰었다. 웃고 울고, 울고 웃고. 지금쯤 광녀의 미친 짓에 만성이 된 동네 사람들 중에는 잠든 이도 많을 것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밖을 내다보던 그들이었다. 그러다가 너무나 오랫동안 똑같이 되풀이되는 광녀의 광기에 이제는 좀 시들해져 ‘또 발광하기 시작하네?’ 하고 조금 성가셔하는 정도로 바뀐 것이다.

차라리 이리 들어 와. 왜 밖에서만 그러고 있는 거야? 조운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무엇이 너를 막고 있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거지? 넌 미친 여자잖아, 광녀. 무슨 짓을 해도 누가 뭐라고 할까. 아무도 그러지 않아. 넌 광녀니까. 하하하.

상황이 확 달라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조운의 등 뒤에서 방문이 열리고 둘님이 마루로 나오는 기척이 들리는가 했더니, 집 밖에 있던 광녀가 담장을 타고 넘어오려고 야단이 벌어진 것이다. 비차 제작장에서처럼 둘님의 머리끄덩이를 낚아채려는 것이다.

“도원아, 가자, 제발! 이 집에 안 오기로 약속했잖아?”

그때 문득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 광녀의 오라버니였다. 같이 왔을 광녀 어머니는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광녀가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소리가 났지만 잠시 후 집 밖은 늪 같은 침묵에 잠겼다.

마당으로 내려선 조운의 발길은 분지를 향했다. 비차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린 그곳은 으스름 달빛 아래 잡귀들 놀이판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거기서는 한바탕 춤사위가 펼쳐지고 이런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으리라.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보자

비차 비차 비차다

진주성에 가보자



어디선가 조운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은 그밤에, 둘님도 술명과 박씨 부부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등잔불이 화르르 타오르다간 꺼져버렸다. 너무나 정신들이 없는 탓에 등잔에 기름을 붓는 일도 깜빡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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