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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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1. 민들레와 삿갓나물
 부산진과 동래성을 연이어 함락한 왜군은 당연히 사기가 오를 대로 올랐다. 피 맛을 알아버린 사악한 늑대 무리는 또 다른 피를 부르기 위해 양산을 거쳐 밀양을 점령하고 대구에 이르렀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엄청난 회오리에 휩싸였다. 짝을 잃은 나비는 찢겨진 날개로 날고, 꽃잎은 산산이 부서져 흩날렸다. 곳곳에 드리워진 건 죽음의 그림자였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철새같이 울고 다녔다. 만삭의 여인은 비루먹은 개들이 코를 처박은 쓰레기통을 뒤지며 허기를 달랬다. 젊은이를 먼저 보낸 늙은이들 통곡소리가 하늘에 닿고 땅 끝을 울렸다.

 침공군 2번대를 이끌고 온 가등청정은 4월 19일 부산에 상륙하자 입맛이 썼다. 풍신수길과는 6촌간으로, 저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맹활약을 펼쳐 소위 ‘시즈가타케의 칠본창(七本槍)’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 그는, 축성술에도 뛰어나 나고야성 공사를 맡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평소 소서행장에게 강한 경쟁의식을 품고 있었다. 그런 자에게 선봉 1진을 뺏긴 게 큰 불만이었다. 그는 벌건 눈알을 부라리고 이빨을 뿌드득 갈며 별렀다.

“하지만 두고 봐라.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한양은 내가 먼저 점령하여 조선 국왕을 반드시 이 손으로 사로잡을 것이다.”

 가등청정은 언양을 지나 경주를 손아귀에 넣고 한양 입성을 단단히 마음먹었다. 훗날 정유재란 때 울산에서 조선 관군과 의병에게 포위되어 혼쭐이 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같은 날, 흑전장정의 3번대는 죽도 부근으로 상륙하여, 김해를 함락하고 창녕을 지나면서 부대를 둘로 나누었다. 훗날 덕천가강에게 접근하여 그의 양녀를 정실로 맞는 흑전장정. 일설에 의하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무공을 세운 그의 손을 덕천가강이 잡은 일이 있는데, 나중에 그것을 안 그의 아버지가 흑전장정더러, 그때 왼손은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왼손에 칼을 들고 덕천가강을 찌르지 않았다고 나무랐다는 얘기가 아닌가 보는 이들이 많지만, 그는 길이나 다리, 집 등 공동 공사에 주력한 덕천가강의 명을 잘 따랐다.

 한편, 그즈음 조정은 항간의 저잣거리처럼 어수선한 속에서 대책 마련에 급급했다. 그 모습들이 시정잡배보다 나을 게 없어 보였다. 지난날 시민이 병조판서에게 건의한 대로 병기를 보수하고 군사 훈련을 강화하지 않았던 잘못이었다. 그날 격분한 시민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짓밟아 부숴버린 그 군모는 지금 어디를 어떻게 떠돌고 있을는지. 어쨌든 어명이 떨어졌다.

“신립을 삼도순변사로 임명하노라!”
 신립. 신숭겸의 후손으로 진주판관을 지내다가 온성부사가 되어, 조선 전기 최대의 난을 일으킨 회령의 니탕개를 물리친 공로로 함경도북병사로 승진된 사람이다. 임금 입에서는 다른 장수 이름들도 나왔다.
“이일을 순변사로 하여 중로를 막게 하시오!”

 도순변사보다는 직책이나 권한이 떨어지는 순변사였다. 이일은 두만강 하구 녹둔도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두만강을 건너 여진의 시전부락을 소탕하였는데, 당시 200여 집채를 불사르고 여진족 380여 명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렸다. 모두 손에 피와 살점을 묻혀본 장수들이기에 얼굴은 비장하면서도 침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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