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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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1. 민들레와 삿갓나물
개령 백성은 질질 끌려가면서도 억울하다고 울부짖었다.

“장군!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소인의 말씀은…….”

이일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 진위를 떠나 듣기도 싫은 소리였다. 관아 곳간에 있는 유명한 상주 곶감도 바닥이 날 정도로 모두 백성들에게 나눠준 그였지만, 기분 나쁜 소식을 물고 온 그 백성은 무조건 싫고 미웠다. 그만큼 지금 그의 신경이 날카롭고 마음이 불안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에이, 재수없게시리 이게 무슨……?”

그 개령 백성이 가지고 온 정보는 허위가 아니었다. 그때 이미 소서행장이 이끄는 왜군 제1번대는 밀양을 점령하고 대구에 무혈입성한 후, 낙동강을 건너 선산까지 진출, 상주 남쪽 20여 리 지점인 장천에 진을 치고 있었다.

불길한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왔다. 왜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일은 옥에 갇혀 있던 개령 백성을 끌어내어 처형해버렸다. 민심을 어지럽혔다는 죄목이었다. 눈알이 허옇게 뒤집혀 죽은 시신이 그의 억울함을 그대로 말해주는 듯했다. 조선군 막사 위로 까마귀 울음소리가 낭자했다. 때 아닌 흙바람이 불어 닥쳤다.

곧이어 이일은 아침부터 군사들을 상주성 북쪽의 북천 강변으로 이끌고 나가 훈련을 시켰다. 산을 의지하여 진을 치고, 진 가운데 대장기를 세웠다. 이일은 갑옷을 입고 말을 탔다. 종사관 윤섭과 박지, 판관 권길, 사근찰방 김종무 등은 말에서 내려 이일 뒤에 서도록 했다. 대장의 위세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일은 결정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왜군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군사훈련장 주변에 보초마저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왜군이 몇 차례나 척후병을 보내 조선군 상황을 일일이 정찰하였다. 원통하게 죽은 개령 백성 혼백이 이일의 눈을 막아버렸는지도 모른다.

한 번은 훈련을 받고 있던 군사들 사이에 큰 술렁거림이 일었다.

“저, 저놈들이 누, 누구야?”

“모, 못 보던 복장이다. 괴상하게 생겼다.”

“왜, 왜놈들 처, 척후병들이 트, 틀림없다!”

“으……. 어, 어서 위에 보, 보고하자.”

그들이 급히 진중 쪽으로 달려가려고 할 때였다. 군사 하나가 얼른 말렸다.

“자, 잠깐! 보고하면 안 된다.”

다른 군사들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왜 보고하면 안 된다는 거야?”

“오늘 아침 처형당한 사람을 벌써들 잊은 거야?”

모두들 멈칫했다. 누구 하나 감히 보고할 자신이 없어 보였다. 차라리 적에게 죽는 것보다 못했다. 그러자 사람은 편할 대로 생각한다고, 이런 소리들이 나왔다.

“아닐 거야. 왜놈들이 벌써 여기까지 올 리가 없잖아.”

“맞아. 우리가 잘못 본 거라고. 너무 긴장해서 그래.”

“훈련을 게을리 한다고 혼나기 전에 훈련이나 열심히 하자고.”

결국 이일은 왜군 척후병에 대한 어떤 보고도 받지 못했다. 이일이 군사들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성에 불이 났다아!”

놀라 바라보니 과연 상주성 안 두어 곳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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