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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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2. 말티고개 나막신쟁이
소서행장이 중화에 축성을 하기 위해 병력을 그곳으로 많이 기울이고 있다는 보고를 명나라 조승훈이 받은 것은 의주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곳은 경덕왕 때 관문을 쌓아올려 북방경계가 된 지역이었다.

부총병 조승훈은 즉시 남진하여 풍우가 심한 야음을 틈타 평양성을 공격했다. 왜군은 갈팡질팡했고 성이 금방 공략될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캄캄한 데다가 눈마저 뜰 수 없게 하는 너무나 심한 비바람에 공격군은 주춤했다. 물론 그 나쁜 기상조건은 수비군도 괴롭히긴 마찬가지였다.

“안 되겠다. 잠시 공성을 멈추게 하라. 이런 악천후 속에서 계속 전진한다는 건 무모한 짓이다.”

줄기차게 내리퍼붓는 굵고 검은 장대비를 보며, 조승훈은 왜군도 모두 손에서 무기를 놓고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전투는커녕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들 판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왜군은 허를 찔러 기습을 해왔고, 대조번과 사유가 전사하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들리는 빗소리는 왜군의 함성소리 같았다. 당황한 조승훈은 부랴부랴 퇴각명령을 내렸다. 명의 제1차 구원병은 장맛비에 돌담 내려앉듯 그렇게 어이없이 무너져버렸다. 비가 원수였다.

가등청정이 영흥에 닿았을 때였다. 영흥평야의 중심지로서 양잠과 축우가 발달했고 예로부터 명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거기서 근왕병을 모집하러 갔던 임해군과 순화군이 모두 함경도에 피신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걸신이 들린 아귀같이 막 서두르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과도직무는 이곳을 지켜라. 나는 북상을 계속할 터이니, 상량뢰방은 지체 없이 내 뒤를 따르라.”

나중에 일본으로 돌아가서 사가성을 쌓아 비전국 나베시마번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과도직무. 그자는 조일전쟁과 정유재란의 두 번에 걸친 조선 침공을 통해 이삼평(李參平)을 비롯한 조선 도공들을 많이 잡아가 아리타[有田]를 도자기의 명산지로 만든 장본인이다. 이순신의 수군과도 싸우게 되는 과도직무의 무용담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저 일본에서의 금산합전에서였다. 6만여 명의 오토모 대군을 맞아 사가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했을 때, 직접 700여 기(騎)를 거느리고 상대 본진을 야습하여 노부사다의 목을 베고 사가성을 지켜낸 것이다.

상량뢰방은 과도직무보다는 한참 못했다. 그는 자기보다도 강한 자의 압박을 받으면 항복해 버렸으며, 결국에는 그의 명령을 좇아 싸우다가 상대의 기습을 받아 죽고 마는 인물이다.

한편 북병사 한극성은 육진의 병사들을 직접 이끌고 해정청에서 가등청정의 군대를 가로막았다.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저놈들은 우리 기사(騎射)를 결코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기사는 북병의 특장이었다. 그렇지만 말이나 화살보다 빠른 총탄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조선군은 무너지고 가등청정은 곧바로 회령을 향해 내달렸다. 그곳 해안에는 포영이 있어 수군만호가 관할하였고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한 황보성이 있었다. 고구려 패망 후 발해 영토였다가 여진족이 차지하기도 한 회령은,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 관서지방과 마주한, 한성에서 멀고도 굴곡 많은 고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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