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5.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장. 2. 말티고개 나막신쟁이
옥봉리 말티고개 근처에 있는 어느 대장간 앞이었다.

그 안에는 불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와, 숯불을 담아놓은 화로, 무쇠를 불려서 만든 쇠붙이 등속이 보였다. 모루와 메, 집게, 망치 등의 연장도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참혹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발이 꽁꽁 묶인 말이 땅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모가지를 길게 빼고 너무나 아픈 표정을 짓는 그 말을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보묵 스님이 혀를 찼다. 술명이 자세히 보니 낯빛이 검붉은 대장장이 둘이 말굽에 징을 박고 있는 중인데, 말의 고통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심드렁한 얼굴이 참으로 잔인해 보였다.

‘대장장이 집에 식칼이 놀고, 미장이 집에 구들장 빠진 게 삼 년 간다더니…….’

술명은 당장 징과 관련된 그 악몽이 떠오르면서 대패로 깎아내리는 듯 마음이 아팠다. 이 나라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봐도 인정이 흘러넘치고 착해빠진 사람들이었는데, 어쩌다가 꼭 있어야 할 조상 대대로의 그런 미덕이 사라져버린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결국 그 시절은 조선 강토가 왜놈들 말발굽에 짓밟혀 그만큼 조선인들의 인간성이 메말라버렸다는 증거였다.

‘우리 백성들뿐만 아니라 우리 말들도 불행한 시대를 타고 태어났구나. 대체 책임져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어쩌면 군마(軍馬)로 끌려갈지도 모를 말이었다. 총칼이나 화살에 맞아 비명을 올리며 참혹한 모습으로 숨이 끊어져가고 있는 그 말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여 술명은 가슴이 먹먹하기만 했다. 그런 술명은 거기 대장간 물건이 장차 아들 조운의 일에 그렇게 큰 도움을 주리라곤 전혀 내다보지 못했다.

아드님은 포기하지 않고 있겠지요? 서둘러 대장간 앞을 떠나 몇 걸음 걸어가던 보묵 스님이 뜬금없이 물은 말이었다. 술명은 자기 가슴에 징이 박히는 느낌이었다. 신의 가죽 창이나 말굽, 쇠굽 등에 박는, 대가리가 넓고 크며 길이는 짧은 그 대못은, 요즘 들어 그의 꿈속에서도 아들 조운과 함께 곧잘 보이곤 하였다.

끝없이 펼쳐진 좁고 가파른 길을 조운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꿈이라지만 하늘도 산도 그리고 조운이 밟고 가는 길도 그렇게 하나같이 검은 빛일 수 있을까? 한데, 그런 가운데 신기한 것은, 조운의 몸만은 온통 새하얀 빛으로 에워싸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체적으로 검은 바탕 때문에 그 흰빛은 한층 눈부시고 돋보였다.

술명이 그만 기겁을 한 것은 어렵게 겨우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던 조운이 갑자기 두 손으로 발을 감싸 쥐면서 내지르는 비명소리를 듣고서였다. 그는 놀란 눈으로 보았다. 조운의 발바닥에 박혀 있는 커다란 징을. 더욱 두렵고 무서운 일은, 그런 징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조운이 걸어가는 검은 길바닥 위에 까맣게 널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 징들은 조운이를 방해하려는 악귀들이 던져놓은 것들이 틀림없어. 술명은 그것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밧줄에 묶인 듯 옴짝달싹할 수도 없어 조운을 향해 애타게 울부짖기만 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