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3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3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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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3. 솜털 날리는 여자
문틈으로 내다보이는 넓은 마당에는 온갖 상인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조용히 농사를 짓는 술명으로선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 그 모든 게 신기해 보였다.

‘어? 곡류를 가지고 온 장사치도 있네!’

뿐만이 아니었다. 담배라든지 쇠가죽 따위를 든 사람들도 있었다. 과연 상인의 물건을 위탁 받아 팔거나 매매를 거간하며, 또 그 상인들을 치르는 영업을 하는 곳답게 활기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문득, 물건 만드는 재주가 뛰어난 조운은, 비차가 완성되고 나면 생업을 위해 장인바치의 길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쳤다.

그러나 술명은 모르고 있었다. 보묵 스님이 들어간 방에서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는. 거기는 방문도 굳게 닫혀 있었고, 또한 어떤 작은 소리도 새나오지 않았다. 벽에 대고 잔뜩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아무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점점 궁금증이 솟아났고 나중에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안에서는 세상이 모를 뭔가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 불투명한 느낌과 함께, 조운의 비밀 작업장인 동네 뒤쪽 분지가 되살아났다. 조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비차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망가진 비차를 앞에 놓고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피눈물을 내쏟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지리도 복도 없는 불쌍한 놈. 어쩌다가 새의 운수를 타고 태어나 그런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지.

술명이 거기 객줏집 마당으로부터 전해지는 이상한 공기를 느낀 것은 그때였다. 뭔가 어수선하고 안정되지 못한 분위기였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별안간 방문 밖에서 웬 젊은 여자 목소리가 크게 들리고 곧이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반사적으로 문틈에 얼굴을 갖다 댔다가 자칫 비명을 지를 뻔했다.

‘헉! 저 처녀가……?’

뜻밖에도 그와 같은 동네에 사는 저 광녀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객줏집 마당까지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노처녀 도원이다. 그런데 보다 술명을 경악케 한 것은 그때 광녀가 하고 있는 짓거리였다. 지금까지 그가 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그 귀한 솜을 어디서 구한 걸까. 광녀는 왼손에 하얀 솜뭉치를 들고 오른손으로 솜털을 하나씩 뽑아 입으로 ‘후’ 불어서 공중으로 날려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는 동시에 이런 소리를 내지르는 것이다.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보자

비차 비차 비차다

진주성에 가보자

방안에 앉아서 그 광경을 내다보고 있는 술명은 물론, 다른 방이나 마당 등에 있던 사람들도 그 희한한 장면에 큰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술명 귀에 이런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비차가 뭐지? 난다고 하니까, 새나 나비 같은 거 아닐까? 진주성에 가면 그게 있는 모양이야. 그런 가운데 이런 이야기들도 섞여 나와 술명을 바짝 긴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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