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건축의 꿈
지리산 건축의 꿈
  • 경남일보
  • 승인 2014.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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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제1차 세계대전은 세르비아의 한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1914년에 발발한다. 애초 단기전으로 예상했던 전쟁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 이탈리아, 터키 동맹국에 대항하여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일본이 연합하면서 확전 및 장기화되었다. 1918년에야 비로소 막을 내린 이 전쟁은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 혁명, 독일에서는 황제정치의 붕괴 등의 큰 정치·사회적 변혁을 가져왔다. 또한 국가의 경제적 파탄을 넘어 그 무엇보다도 심각했던 것은 850만 명을 웃도는 전사자의 숫자였다. 이는 총기를 비롯한 독가스, 전차, 폭격기, 잠수함 등의 고도의 현대적 살상무기가 도입된 결과였다.

사실 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 사람들은 산업혁명을 통해 이룩될 꿈의 이상향의 세계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18세기 중엽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기술과 기계의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이를 통한 대량생산은 풍부한 물품을 제공해 주었고 기차, 자동차,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의 발달은 이동의 편리함과 자유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여기에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싹트기 시작한 사람중심의 인본주의 및 고전주의 사상의 융합을 통해 인류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가운 현실로 다가온 것은 과학과 기술이 가져다 준 대량 살상과 전쟁 및 폐허였다. 이는 명확한 역사적 퇴보였고 충격과 실의에 빠진 유럽 사람들은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독일의 브루노 타우트(1880∼1938)는 이처럼 산업과 기술문명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좋은 해답을 가르쳐 준 건축가이다. 그의 생각은 자신의 화보집인 ‘도시의 왕관’과 ‘알프스 건축’ 등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기술과 과학문명은 파괴나 살상이 아닌 평화로운 건축 및 도시건설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이를 위해서는 산업과 기술이 알프스 같은 순수 자연, 빛으로 가득한 성스러운 유리수정체 건축, 문화 및 복지시설 등의 조화로운 건설을 통해 모든 시민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를 만드는 순기능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정치적 개념이 아닌 순수한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며 오늘날의 생태건축 및 도시 이론의 근간을 이끌어 낸 것이기도 하다.

천신만고 끝에 진주에 유치한 경남혁신도시는 처음부터 ‘산업지원과 첨단주거 도시’ 건설을 지향하여 왔다. 여기에는 생태 및 저탄소 녹색도시, 첨단 주거문화 도시, 지역선도 글로벌 산업단지, 고육·문화중심 도시 등의 4대 추진전략이 들어 있어 앞서 설명한 타우트의 생각이 그대로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의 실행을 위한 도시계획과 공공디자인 가이드라인 등은 있는데 반해 ‘알프스 건축’에서처럼 그 건축적 방안 및 방향에 대한 지침이나 논의가 부족하거나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혁신도시 건축의 정체성과 특징은 예상하기가 어려워졌고 이미 들어섰거나 진행 중인 건축물은 건축주의 개별 취향이나 의도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최근 단독필지 등에 대한 무분별한 완화조치까지도 언급되고 있어 혁신도시 내 정주환경의 질을 훼손할 우려마저 낳고 있다.

혁신도시는 지방의 특징을 살리고 균형발전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시행되었고 또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유치한 것이다. 이에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첨단산업과 기술, 생태, 복지, 문화 등이 시민과 공존하는 미래지향적인 건축을 통해 성공적인 마무리 작업을 해야만 한다. 비록 늦은 감이 있기는 하나 지금이라도 이를 위한 다양하고도 전문적인 논의와 작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어야 한다. 이는 또 하나의 규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알프스 건축’이 ‘지리산 건축’으로 태어나게 하는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일이다.
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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