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유
희망의 이유
  • 경남일보
  • 승인 2014.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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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최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각계 지도층의 설화가 이어져 새삼 사회 일각의 불통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불통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빗나간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월호의 아픔은 개인적 차원을 뛰어넘어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고서는 우리 사회를 심각한 위기로 내몰고 있는 의식의 자폐증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는 비록 침몰했지만 우리 가슴 속의 세월호는 다시 끄집어내어 복원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에 응답하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의 이유를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들은 그동안 각자의 몸값을 생각하지 않고 위기의 옷을 입고 살아왔다. 그것은 우리들이 세상의 바깥으로 나가는 발걸음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세상의 바깥으로 나가는 발걸음을 거부’했기 때문에 우리의 아들과 딸이 ‘자기 세상의 값을 매기지 못하고’ 살게 되었다. 나와 가족들에게 벗어던지기 어려운 위기의 옷을 입혀준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이다. 말하자면 세상과 교감하지 않고 너무 고결하게 산 결과이다. 이러한 위기는 구조적으로 확대된다. 곧 위기는 개인적 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나의 딸도 아들도 모두 나를 닮아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과 단절된 우리들의 자폐가 자폐아를 키우고 우리 사회를 더욱 병들게 했다.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가 자폐를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폐에도 서열이 있어 검열과정을 통해 검인증까지 받으면서 자폐의 등급을 매기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한번 검인증을 받으면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속이 텅 비는 줄도 모르고, 온 세상을 파프리카처럼 생각하고 방을 나누어 이 방과 저 방을 만든다. 이 방의 사람은 저 방의 사람을 보지 못하고, 방마다 서로 다른 옷장만 늘어난다. 그러면서 자신이 바라보는 것만이 ‘선’이라고 믿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 우리들은 이런 악순환의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 자폐증에 의해 닫힌 시각으로 서열과 등급을 매겨 마음을 닫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자폐증이야말로 자신을 침몰시키고 우리 모두를 침몰시키는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이제 절망이 희망이 되고, 인간에 대한 회한과 아픔이 성숙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참 한가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을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그리 한가한 말만은 아닐 것이다. 비록 당신을 버리고 바람처럼 먼 길을 떠도는 자식이라도 당신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것은 이 땅의 수많은 부모들의 숙명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자식들을 위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던 이 땅의 수많은 부모들을 생각하면서 절망과 희망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할까. 지금 세월호 부모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면 더 이상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들 때문이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자신의 아들·딸들에 대한 절규는 이 땅의 아들·딸들에 대한 절규로 바뀔 것이다.

그들이 절망적인 순간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 땅의 아들·딸들이 살아갈 세상이다. 타인에 대한 희망 때문에 절망하고 다시 희망을 가진다. 이 삶의 역설이 그래도 이 땅 위에서 사람들이 끝임없이 끈을 엮어 살아가게 한다고 생각한다. 희망의 이유는 때때로 자기를 초월하기도 한다. 인간이 아주 이기적인 것 같아도 적어도 절체절명의 절망은 인간을 가장 인간적으로 돌려 놓는다. 자식의 죽음 앞에 선 부모가 다시금 희망을 갖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오늘 하루 밥을 먹고 아이를 배웅하는 것도 크나큰 희망이라면 우리는 아직 절망의 순간을 한 번도 가지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자신을 초월하여 타인에게서 희망의 이유를 간절히 찾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이제 우리가 진정성 있는 응답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들이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온 자폐의 벽을 허물고 이러한 마음을 공유하는 곳이야말로 새로운 희망의 출발이 이루어지는 ‘크고 큰 방’이다.
 
 
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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