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3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3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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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1. 비밀의 산행
“제 마음 같아선 그들과 한번 만나게 해드리고 싶지만, 이건 워낙 극비리에 행해져야 할 사안이고, 또 저들도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지라…….”

보묵 스님 말에 술명은 손을 크게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자칫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들께 어떤 누라도 끼치면 안 되지요. 무엇보다 나라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험한 이런 시기에 말씀입니다.”

보묵 스님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가랑잎 굴러가는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속세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그였다. 언젠가 그와 함께 가보았던 대사지 쪽 연지사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술명은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저런 분들도 있는데 제가 개인적인 생각만 했던 것 같아 스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제 자식놈한테도 꼭 이 이야기를 해주도록 하겠습니다.”

연지사 종신에 부조된 비천상이 구름 위에서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두 팔을 벌려 치던 장고소리도 귀를 생생히 울리는 듯했다. 보묵 스님도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하며,

“잘 생각하셨습니다. 깨치는 게 많을 겁니다.”

그때 옆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는 기척이 났다. 술명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보묵 스님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다가 도로 주저앉았다.

“만사 조심이 최고지요.”

“또 그 일을 하려고 나가는 모양이지요?”

술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보묵 스님은 고개를 끄덕인 후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그들의 안전과 노고에 대해 부처님께 기원하는 듯했다. 술명도 속으로 빌었다. 제발 내 자식놈이 그 일을 이루어 위기에 빠진 이 나라를 건질 귀인을 구할 수 있기를. 그런데 술명의 가슴이 또다시 먹먹해진 것은 보묵 스님이 하는 이런 말을 듣고서였다.

“조금 전 마당에서 벌어졌던 그 소란 말입니다. 빈승은 상인들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거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었지요?”

술명은 보묵 스님을 속일 수는 없어,

“저희 동네에 살고 있는 미친 여잔데, 언제부턴가 아무 곳에서나 그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바람에 사람들이…….”

“혹시 아드님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건 아닌지……?”

그러다가 스스로 생각해도 억지소리라고 느꼈는지,

“아, 관계라기보다도 날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요.”

그도 광녀가 큰소리로 불러대던 노래는 자세히 들은 듯했다.

‘충청도 노성의 윤달규라는 그 사람에 대해 들려주어야 할까?’

술명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아무리 헤아려 봐도 그건 소문에 불과할 뿐 어떤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것이다. 조운과 상돌은 윤달규가 비차를 타고 공중을 날고 있는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했다.

“비차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주성에 가면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더군요.”

보묵 스님은 비록 광녀가 한 소리지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천기누설이란 말을 떠올리고 있는 술명의 귀에 또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보자. 비차 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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