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3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3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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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1. 비밀의 산행
“듣자니 왜놈들이 물러갔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상돌이 동편 하늘가로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아침해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수평으로 바라보는 해는 엄청 커 보였다. 조운에게는 그게 흡사 붉은 비차같이 비쳤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달도 새도 낙엽도 심지어는 바람조차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비차가 아닌가 싶었다.

“아직은 완전히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네. 워낙 독한 족속들이라 언제 또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자칫 튀어 나온 돌부리에 걸려 엎어질 듯하다가 얼른 균형을 바로잡으며 조운이 말했다. 상돌은 조운의 몸을 잡아주려고 급히 내밀었던 손을 도로 거둬들였다.

“하긴 완전히 물러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순순히 제 나라로 돌아갈 것들이라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형님 그 말씀을 들으니 너무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이번 길도 조심해서 다녀와야 할 걸세. 혹시 다른 곳에서 싸우다가 도망쳐 온 왜놈 패잔병들이 어디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운이 주위를 살폈고 상돌도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으며,

“언젠가 형님을 모시고 충청도 노성까지 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정백이란 그 산적 두목도요. 하여튼 그 윤달규라는 사람, 정말 고집불통 아니었습니까?”

“그래도 그가 도움을 주지 않았나. 비차라는 이름도 알게 되었고, 배를 두드리는 것도 그렇고, 고마운 사람이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사람의 운명만큼 피할 수 없는 게 다시 있을까?”

상돌은 그 말에는 대꾸가 없다가 잠시 후에,

“형님! 다리 아프시지요? 죄송합니다.”

“난 괜찮아. 걸을 만하다고. 저 처녀 걱정이나 해.”

상돌은 뒤에서 따라오는 백정 처녀를 가끔씩 돌아보면서 부지런히 발을 떼놓았다. 그 처녀는 시종 아무 말이 없었다. 발소리도 크게 내지 않았다. 간혹 호흡이 가쁠 때 한 번씩 내쉬는 숨소리를 통해 그녀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곳에서 왜놈들을 만나게 되면…….’

조운 자신과 상돌은 죽이고 백정 처녀는 겁탈한 후 끌고 갈 왜구들이었다. 전쟁이 나면 남자들보다도 여자들이 더 불쌍하고 염려된다는 것을 조운은 깨달았다. 그리고 나라가 잘못되면 조정은 말할 것도 없고 사가(私家)에서도 그동안 모든 실권을 휘둘러왔던 남자들 책임이 크다는 사실도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우리 가정을 끌어오신 아버지가 더욱 존경스럽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의 모성애를 떠올리면 가슴부터 먹먹했다. 부모님께서 나누시던 이런 대화는 세상 어떤 자식사랑보다도 각별한 것이었다.

“하나 있는 아들자식을 어떡해요?”

“하나 있는 아들자식이라니? 아들이 셋이나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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