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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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2. 싸울아비들
아무것도 모르는 왜군은, 조선군이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진주성 안에만 피신하듯 모여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리하여 소풍 나온 아동들처럼 유유자적 행군해 왔다.

‘이놈들! 조금만, 조금만 더…….’

이윽고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시민은 호랑이가 포효하듯 큰소리로 외쳤다. 공격하라!

수비만 하고 선제공격은 결코 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은 조선군의 기습은, 왜군 선견대를 격파하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적은 숱한 사상자를 내고 야음을 틈타 도주하기 바빴다. 조선군은 승전의 기세를 몰아 세찬 바람 들이치듯 사천성 바로 밑까지 진격했고, 왜군의 후방보급로를 차단해버렸다. 그러자 한층 놀란 왜군은 사천을 포기하고 고성으로 도주하여 그곳에 진을 쳤다.

“이번 기회에 왜적을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 계속 추격한다.”

시민이 이끄는 조선군은 대둔령을 넘어 성하까지 추적해 갔다. 혼겁을 한 왜군은 웅천과 김해 방면으로 궤주했다. 조선군의 완벽한 승리였다. 진주성으로 돌아오는 개선군의 발걸음은 자랑스럽고 씩씩했다. 풀잎도 옆으로 물러나고 바람도 피해 지나갔다. 이후로 왜군은 진주 가까이 오는 것도 꺼렸다.

시민의 명성은 삽시간에 온 고을과 인근에까지 쫙 퍼졌다. 조운은 자기 일같이 기뻤다. 비차를 만드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술명이 박씨에게 말했다. 김시민 장군이야말로 보묵 스님이 예언한 그 귀인이 틀림없다고. 학노도 정씨에게 똑같은 소리를 하였다.

시민의 형형한 눈빛이 진주성 안 이곳저곳을 훑어 내렸다. 길게 이어진 성가퀴(女墻, 여장)에 올라앉은 까치들도 승전을 자축하듯 큰소리로 지저귀고 있었다. 털이 퍽 매끈해 보였다. 시민은 혼자 중얼거렸다.

“조운 그 사람이 빨리 비차를 완성시켜야 할 터인데…….”

그것을 타고 하늘에서 왜놈들 머리 위로 불벼락을 내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시민의 생각에, 비차보다 훌륭한 무기는 없었다. 어떤 발명품도 그보다는 못했다.

‘만약 그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우리나라가 생기고 나서 최초로 하늘을 나는 기구가 될 테지. 어쩌면 세계에서 맨 처음일 수도 있어. 세계 최초라. 생각만 해도 심장이 떨리는걸. 하여튼 조운이 그 사람 대단한 인물이야. 그런 큰일을 저지르려고 하다니.’

그 시각, 조운은 조운대로 가마못 뒤편 분지에서 작업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었다. 시민의 혁혁한 전공을 접할수록 그는 선의의 경쟁자로서 마음이 급했다. 저쪽은 준비가 다 되었는데 이쪽은 여전히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못했다. 보묵 스님 예언대로라면,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소리지만, 틀림없이 시민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가 올 것이었다. 그것도 머잖은 날에. 그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되었다.

왜 여태 그것을 이루어내지 못하였나. 덧없이 흘려보낸 날들이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는 죄인가. 꼭꼭 숨은 아이들을 찾아내는 술래처럼, 비차라는 새의 그림자를 찾아 헤매는 이 술래잡기는 언제 끝날 것인가. 아니, 죽어야만 이 천형(天刑)과도 같은 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아직도 술래인 그였다. 날이 더 이슥해지기 전에 끝내야 했다. 결국 시간싸움이었다. 얼레로 연을 되감듯 그 시간들을 되돌릴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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