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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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3. 환각은, 꿈은
8월 초순(음력)이었다. 시민은 전 좌랑 김면을 돕기 위해 거창으로 달려갔다. 금원산과 기백산, 단지봉 등 하늘을 찌를 듯한 봉우리들이 열 개도 더 넘는 고장이다. 덕유산과 가야산에서 뻗어내린 산들을 넘어 그곳까지 이르는 것만도 예사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시민은 ‘울면서 왔다가 울면서 간다’는 말을 떠올렸다. 한양의 중앙관리가 거창으로 발령을 받으면, 이렇게 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어떻게 살까 하고 울었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는 뛰어난 산수 경치와 풍족한 물자를 두고 가기 싫어 또 울었다는 데서 생겨났다는 말이었다. 시민은 자신에게 타이르듯,

‘나는 웃으면서 왔다가 웃으면서 가리라.’

의병장 김면은 고령 사람으로, 왕을 태운 수레가 서북으로 파천했다는 소식을 듣고 왕을 모시기 위해 거기로 따라가려 했다. 일찍이 이황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후진 양성에 힘쓴 선비다운 충정이었다. 그러다가 정인홍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종도, 곽준, 문위 등과 더불어 거창, 고령 등지에서 의병을 모았다.

두세 해 전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무고함이 밝혀져 석방된 조종도. 경사(經史)에 밝고 기개가 높았으며 해학을 즐겼던 인물이다. 하지만 훗날 정유재란 때 곽준과 더불어 의병을 모아 황석산성을 쌓고 가족까지 이끌고 들어가 성을 지키던 중 가등청정의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게 된다.

곽준은 굶주린 군사가 들에 가득할 때 군량을 얻어 해결하였으며, 조정에서 재능이 탁월한 자를 뽑을 때 안음현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아들 이상, 이후와 함께 황석산성에서 최후를 맞는다. 그는 순국하기 수십 일 전에 친구들과 이별하는 이런 시를 짓기도 했다.

평소 묘당에서 경륜을 강론할 적에

모두 남아라고 했지만 정녕 몇 사람인가.

푸른 바다에는 핏물이 흐르고 대지에는 비린내 풍기는데

이별을 맞아 서로 힘쓰기를 인(仁)을 이룸에 있네.

곽준의 딸은 남편을 따라 성에서 빠져나왔으나 남편이 왜군에게 사로잡히자, ‘아버지를 남겨두고 나온 것은 남편 때문이었는데, 남편이 적에게 잡혔으니 살아 어디에 쓰겠는가?’ 하고 통곡하다가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다.

문위는 김면이 싸움 중에 병으로 죽자 뒷일을 맡아 처리한 인물로서, 선조가 서거하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사직하고 고향인 거창으로 내려간다. 정인홍과는 같은 남명 조식의 문인이었지만 정인홍이 대북(大北)의 집권자가 되자 그와의 관계를 끊고 두문불출 독서에만 전념하기도 한다.

조선군은 거창 사랑암(沙郞岩, 지례(知禮)의 땅)에서 왜군과 대치했다. 금산과 개령 사이에 주둔한 적병은 10만이나 되었다. 시민과 김면은 의기투합했다.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싸움터로 나갔다. 김면은 왜군을 향해 말을 달리고 칼을 휘두르면서 시민에게 말했다.

“나라에서 높은 벼슬로 공(公)을 대우한 것은, 요컨대 오늘에 쓰기 위한 것이요, 죽음이 있을 따름이지 퇴각해서는 아니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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