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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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3. 환각은, 꿈은
둘님은 친정어머니 정씨와 함께 가마못 가에 서 있었다.

하늘이 거꾸로 비치는 못에는 흰구름 몇 장이 두둥실 떠 있었다. 인간들이야 싸우든 말든 우리 자연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그저 평화로워 보였다.

이 내 심정을 어느 뉘 알까? 둘님의 마음은 더없이 기쁘면서도 무거웠다. 아주 늦은 임신을 한 것이다. 조운이 비차에만 빠져 있는지라 드물게 가진 합방이었다. 특히 광녀 도원 처녀가 그들 사이에 끼어든 탓에 운우지락을 제대로 나누지도 못했다. 나이가 들어 포기하고 있던 판에 아이가 들어섰으니 삼신할미가 고마울 수밖에.

둘님은 처녀 시절에 벗들과 함께 마을 어귀 정자나무 밑에서 동네 서당 문훈장으로부터 들었던 삼신할미 이야기를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삼신(三神)이란 말이 어디서 왔는가 하면…….”

그것은 ‘삼줄’이니 ‘삼 가르다’라는 등의 말을 통해 볼 때, 본디 삼이란 포태(胞胎)의 의미가 있는지라 포태신을 가리킨다는 거였다. 그런데 둘님이나 벗들이 거기까지는 그런 대로 알아듣겠는데, 그 다음에 삼신의 유래를 말해주는 소위 서사무가인 <제석본풀이>와 <삼승할망본풀이>라고 하는 것에 관해 들려줄 때는 그만 깜깜했다.

“에, 이 제석본풀이는 제석굿에서 소리 내어 외는 것으로, 보통 삼불제석이 삼신이 되거나 당금애기가 삼신이 되기도 하지. 흐음.”

“훈장님, 좀 더 쉽게요. 제석굿은 뭐고, 당금애기는 누군데요?”

그러나 문훈장은 외려 이런 무식한 것들을 봤나? 하는 표정으로 자기 할 소리만 계속 늘어놓았다.

“삼신할망이 어떻게 산육(産育)을 맡아서 주관하게 되었는가를 세세히 밝혀주고 있는 게 삼승할망본풀이인데…….”

우리 지역에서는 ‘삼신바가지’라고 하여 커다란 바가지에다 쌀을 담고 한지로 덮어서 묶고 안방 시렁 위에 모셔놓는다고 했다.

“그 바가지 위에다가 타래실을 놓는 이유는 뭔데요?”

그는 두 손을 비비는 시늉을 하며, ‘수명장수를 비는 거지.’ 했다. 그런데 지금 둘님의 마음에 가장 큰 비중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이를 낳게 되면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빌기 위해 삼신상을 차린다는 얘기였다.

“삼신상에는 밥과 미역국을 한 그릇씩, 아니 어떤 집에서는 더 지극정성으로 모신다고 세 그릇씩 올리기도 하느니.”

하여튼 대단한 여신이 삼신할미였다. 그런데 그런 여신의 점지로 아이 아버지가 될 조운의 반응이 야릇했다. 그렇게 대를 이을 자식을 원하더니, 지금은 좋아하는 것인지 싫어하는 것인지 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설마 도원 때문은 아니겠지? 시도 때도 없이 아무 곳에서나 저 ‘비차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광녀. 그래서 이 고을에서 그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다. 아무튼 둘님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왜구가 난리를 일으킨 마당에 아내 뱃속에 아이를 가지게 된 남편의 복잡한 심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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