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또 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 경남일보
  • 승인 2014.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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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밀양에서 출생해 마산에서 성장한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 경상도 사람 이제하 선생의 시에 가수 조영남이 곡을 붙인 ‘모란동백’에 나오는 구절이다.

조영남은 후일 이 노래가 자신의 장례식에 추모곡으로 불리길 바란다고 했다. 구슬픈 멜로디와 애잔한 가사 때문에 어쩌다 나도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인간의 생명은 전 우주보다 무겁고 엄숙하다 했는데 무릇 한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생로병사의 법칙을 피할 수 없으며 끝내는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는 허망한 순간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얼마 전 가까운 분이 이승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귀천하셨다. 뚝뚝 모란꽃잎이 떨어지던 날 지극했던 붉은 사랑도 떨어져 내렸는가. 고단했던 한 생애가 땅에 묻히고 먼 산에 뻐꾸기 울음으로 안식의 이불을 덮어 주었다. 아직 귀밑이 푸른 부인과 어린 자녀들을 두고 황망히 가신 분의 자리가 너무 안타까워 여러 날을 두고 내내 마음에 파문이 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혀 살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참으로 성실하게 살다 가신 분이다.

투병생활 내내 곁을 지킨 부인은 극심한 슬픔을 속으로 꾹꾹 눌러 삼키며 지극히 절제하지만 그 모습이 한파에 무심코 툭 떨어져 버린 동백꽃일련지 더욱더 슬프고 애처롭고 숙연하였다. 노심초사 애간장이 녹아 모르긴 해도 가슴엔 홍수가 들었을 것이다. 그리움조차도 남겨진 자의 짐이 될려나. 감히 그립다는 말도 할 수 없는 것들이 형벌처럼 다가오는 고독한 시간도 있으리라. 상처는 가혹하지만 남겨진 삶의 무게인 등불같은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부디 고통을 잘 견뎌내길 바랄 뿐이다. 그동안 주름 잡힌 마음을 헤아려 주고 때때로 베어져 나오는 삶의 물기를 따뜻하게 껴안아 주는 온기를 불어넣는 일은 이제 주변인의 역할로 남았다.

인간이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가장 후회하는 보편적 세가지는 좀 더 베풀고 살지 못한 것, 좀 더 용서하고 참지 못한 것,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후회하는 것은 왜 그리 어리석게 불행한 모습으로 가족과 주변사람을 힘들게 했나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한다.

 

황숙자 (시인)



한 담배회사가 삶의 후회란 이색 설문조사를 했는데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는데 일주일에 대략 45분 정도를 소요하고 끝까지 ‘네탓이오’라고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는 비율도 꽤 되었다고 한다. 후회하게 되는 대상으로는 삶, 가족, 건강, 경력, 금전 순이었다.

인간이기에 아무리 인생을 잘 살았다 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고 미래이다. 누구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설계한다. 미래가 마냥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 희망과 꿈과 목표를 꿈꾼다. 하지만 미래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오늘을 온전히 저당 잡힌 채 산다는 것은 또다른 후회를 남기는 일이다. 당장 내일 일은 신만이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 일이다. 지난한 과거는 잊어버리고 새 출발하는 사람처럼 희망을 갖고 오늘이 생의 첫날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살 일이다. 오늘이란 누군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란 말을 이마에 새긴다.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계절은 또 오고 가는 것. 하나 인간은 한번 가면 그만이니 허망하다. 다시 돌아온 일상, 계절은 초여름인데 마음은 한겨울마냥 시리다. 잠시 허상을 좇아서 살아온 시간일지 낯선 감정으로 쓸쓸하다. 인생 참 별거 아니었어. 텅 빈 얼굴로 잠시 숨고르기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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