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5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5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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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2. 신이 보낸 사람
시민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조선군이 성 밖을 노려보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조운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 가마못 뒤쪽 분지에서 비차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데, 둘님이 어떤 낯선 남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것은 여태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누군데 이곳까지……?’

조운은 바짝 긴장했다. 그가 일생을 걸고서 하고 있는 그 작업은 천기(天機)라고 할 만큼 극비리에 행해져야 했고, 따라서 외부인에게 노출시켜서는 안 될 일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작업장 출입(그것도 무단으로)을 한 사람은 광녀 도원 처녀 정도가 전부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구분도 제대로 되지 않는 위험한 전시(戰時)가 아닌가.

“이분이 멀리서 당신을 찾아 오셨다기에 모시고 왔어요.”

그렇게 말하는 둘님 또한 조운 못지않게 아주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런 그녀에게서는 나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거기에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 같은 빛이 엿보였다. 아마도 그 남자가 거절하는 둘님에게 꼭 조운을 만나야겠다고 고집을 피운 모양이었다.

나를? 조운은 일손을 멈추고 그 남자를 좀 더 눈여겨보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생면부지의 방문객이었는데 조운 자신보다는 나이가 많은 중년의 사내였다. 쏘아보는 듯한 눈빛이 조운의 간담을 더욱 졸아붙게 했다. 혹시 왜군이 보낸 염탐꾼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들었다. 조운의 목소리는 절로 떨려 나왔다.

“누구신데 저를 만나러 오셨습니까?”

그러자 남자는 거기 공터에 가득 쌓여 있는 대나무더미와 무명천, 마끈, 화선지, 수없이 잘라놓은 소나무와 참나무 등을 한참 바라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참으로 대단합니다그려. 여기서 이런 분을 만날 줄이야…….”

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찬연한 태양빛이 분지를 에워싸고 있는 능선을 밝게 비추어, 보통 때와는 다르게 퍽 낯설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그 남자의 출현이 빚어낸 일시적인 착시가 아닐까 싶었다.

역시 내가 와 보길 잘했군요. 그는 혼자서만 말했다. 그만큼 감동에 빠졌다는 증거일까. 어쩌면 중대한 비밀을 알아냈다는 데서 맛보는 쾌감에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조운과 둘님은 몹시 불편한 심정으로 정체를 짚어낼 수 없는 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신분을 모르는 상대는 누구나 대하기가 버겁고 거부감이 가기 마련인 법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광녀보다도 훨씬 더 신경 쓰이게 하는 불청객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 댁은 누구시기에……?”

조운이 다소 강한 어조로 나갔다. 그러자 그는 묘한 미소를 띤 얼굴로,

“우리 인사나 나눕시다. 나는 전라도 김제에서 온 정평구(鄭平九)라는 사람이올시다.”

일순, 부부는 똑같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조운이 피로써 새로 완성시켜놓은 비차와, 숱한 실패의 흔적물인 비차 잔해들도 일제히 이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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