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발길이 잦아야 하는 이유
한국인의 발길이 잦아야 하는 이유
  • 최창민
  • 승인 2014.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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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민 (창원총국 취재부장)
일본 교토 소재 도시샤대학에는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 대학에서 공부했던 재한국인 동문들이 중심이 돼 1995년에 세웠다. 시비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머리작품인 그야말로 ‘서시(序詩)’가 새겨져 있다.

서시가 세상 빛을 본 것은 하동 출신 정병욱이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정병욱은 1922년 하동 금남면 덕천리 출신으로 본관은 진양이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하동 섬진강 건너 광양 망덕포구에서 살았다. 총명했던 그는 서울 연희전문 문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교수로서 국문학자로 최고의 명성을 쌓았다. 대표작으로 수필집이자 논문인 ‘국문학산고’가 있다.

윤동주와 정병욱의 인연은 연희전문시절이다.

백두산 너머 북쪽 끝 길림성 명동에서 태어나 용정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왔던 윤동주와 남쪽 끝 하동 금남에서 태어나 서울로 갔던 두 사람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정병욱은 윤동주보다 5살이 적었지만 문학, 예술적으로 공감하면서 형, 아우지간 친분을 유지하며 교류했다.

이후 윤동주는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을 거쳐 기독교계학교인 교토의 사립 명문 도시샤대학에서 수학했다. 하지만 1944년 7월 방학을 맞아 고향에 다녀오려던 차에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조선 유학생을 대상으로 ‘독립과 민족문화수호를 선동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인근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감된 뒤 이듬해 2월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후쿠오카 형무소는 일본의 잔혹한 생체실험이 있었던 곳이어서 그로인해 사망했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함께 수감됐던 그의 고종사촌형 송몽규의 ‘알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는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면 서시는 어디로 흘러 다녔을까. 두 사람이 교류하던 연희전문시절 윤동주는 1942년 일본으로 떠나면서 자신이 그동안 써왔던 육필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후배이자 절친인 정병욱에게 준다. 그 역시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자 섬진강 망덕포구에 살고 있던 어머니에게 원고를 맡긴다. 일본으로 떠났던 윤동주는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하고, 무탈하게 돌아온 정병욱은 이 원고를 어머니께 건네받은 뒤 윤동주의 또 다른 절친 강처중이 보관하고 있던 시를 모아 1945년 ‘윤동주 유고집’을 냈다.

이 드라마틱한 사연을 간직하고 세상에 나온 ‘서시’는 남한, 북한뿐만 아니라 한때 일본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시대적 반향을 일으켰다.

윤동주의 시비는 그의 모교 용정중학교 교정에 서 있고 육필원고가 보관 발견됐던 망덕포구에도 서 있다. 그리고 최근 윤동주관련 취재를 위해 갔었던 일본의 도시샤대학 캠퍼스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대개 ‘동족의 비애를 가슴에 안았던 식민지 청년의 순결한 희망’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정작 일본에서 만났던 학생들과 현지인들은 윤동주를 잘 모르고 있었다. 더욱이 일본에서 한국 관광객과 학생들을 안내하는 현지 안내인들도 윤동주시비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도 이 대학을 지나치면서 ‘이곳에 윤동주 시비가 있다’는 정도로 말하고 주마간산(走馬看山) 지나친다고 한다.

윤동주는 그 시절 최일선에서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 저항시인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그의 양심, 순수한 청년정신 거기서 배어나오는 시어의 싯귀는 지식인으로서 느꼈던 고뇌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교토 도시샤대학 앞을 지나갈 때 윤동주시비를 꼭 한번 찾아보길 권한다. 한국인의 추모 발길이 잦아야만 일본인들의 가슴속에도 존재감이 각인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시 ‘향수’를 쓴 정지용도 함께 있다.
최창민 (창원총국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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