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8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8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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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1. 추진장치를 달아라
동녘에서 서서히 빛의 씨앗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날 하루도 또 얼마나 많은 아군과 적군이 서로 죽이고 죽을는지 모른다. 모쪼록 수성장 시민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친 조선군이 성을 지켜주길 빌고 또 빌 뿐이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비차를 완성하는 게 그들에게 주어진 하늘의 뜻이자 애국하는 길이었다.

“자, 우리가 그동안 비차의 다른 부대물은 그런 대로 조립했으니, 오늘은 비차의 추진장치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 보도록 합시다.”

정평구는 겉으로는 여유를 보였지만 그의 말 속에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의 심정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살이 빠지고 피를 말리는 날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건 기필코 성공해야 할 일이지만 그에 못잖게 중요한 게 시간싸움인 것이다. 성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나면 무용지물이 돼버릴 수도 있었다.

“비차의 추진장치라고 하셨습니까?”

추진장치, 그 말도 조운의 귀에는 생경하게 들렸다. 그러자 정평구는 그전에 조운과 상돌이 그랬던 것처럼 손으로 자기 배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소.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강형이 내게 물었던, 비차의 배를 두드리는 일이 될 것이오.”

“아, 배를 두드리는……?”

그들은 비차의 몸체에 눈을 박았다. 그때쯤 막 떠오른 해가 비춰주는 새날의 빛살을 받고 우뚝 서 있는 비차는 천하무적 거인 같아 보였다. 북해(北海)에 살던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변해서 되었다는, 하루에 9만 리나 난다는 상상 속의 새인 대붕(大鵬)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들은 나란히 비차에 올랐다. 이제 그것은 몇 사람이 타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했다. 작은 바람만 불어도 술 취한 사람처럼 비칠비칠 굴러가 확 뒤집히거나 맥없이 픽 거꾸러지던 예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들은 비차 안에 사람이 앉도록 설치된 틀에 각각 몸을 내려놓았다. 그들 그림자도 따라했다. 그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니 온몸으로 안정감이 전해졌다. 마치 비차의 일부분이 된 것 같은 일체감마저 느껴졌다.

“여기 이 줄…….”

정평구가 거기 줄을 잡으며 말했다. 그것은 날개를 움직이게 하는 줄이었다. 말하자면 비차에 탄 사람들이 날개를 움직이는 그 줄과 연결된 기계장치를 움직이면, 비차의 양쪽 날개는 위아래로 움직이게 되고, 그리 되면 비차는 땅 위에서 떠오르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돼 있는 것이다.

“생명의 줄이 아니겠소.”

생명의 줄. 정평구의 그 말이 조운의 귀에는 어쩔 수 없이 불안하게 들렸다. 만에 하나, 그 줄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긴 그 줄만이 아닐 것이다. 비차에 장착되어 있는 어느 것 한 가지라도 잘못되면, 비차를 타고 있는 사람은 그대로 머리 위에 있는 하늘나라로 직행할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 가죽주머니 말입니다.”

조운은 방정맞고 불길한 생각을 머리에서 내몰기 위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정평구의 눈도 조운처럼 비차 동체에 있는 그 가죽주머니를 향했다. 조운은 심각하다 못해 딱딱해 보이는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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