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문제 해법은 용기와 솔직함에서 시작된다
물 문제 해법은 용기와 솔직함에서 시작된다
  • 이홍구
  • 승인 2014.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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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창원총국장)
예로부터 송사(訟事)중 가장 지독한 것이 물 송사였다.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도 물 분쟁이 나면 낫을 들고 뛰어간다고 할 만큼 민감한 것이 물 문제다. ‘제 논에 물대기(我田引水)’라는 말이 있다. 경남-부산이 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한쪽에선 “우리가 남이가, 남는 물만 쓰게해 달라”하고, 다른 한편에선 “주고 싶지만 우리도 물이 부족하다”고 항변한다. 경남출신이면서 부산에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부산시민이지만 진주향우회·남해향우회처럼 정서적 뿌리는 경남에 두고 있다. 하지만 마시는 물 문제가 나오면 입장이 달라진다. 그래서 그동안 정부도, 정치권도, 단체장도 이 문제를 정면에서 바라보지 못했다. 회피하거나 변죽을 울리거나 일부 시민단체에 편승했다.

민감한 물 문제를 더욱 꼬이고 얽혀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 지역민이 반발할 때마다 수시로 계획을 변경하며 말을 바꾸다보니 이젠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못할 만큼 불신이 깊어졌다. 정부는 남강댐 수위를 높여 남강물을 부산에 공급한다고 했다. “남강댐 수위를 높이는 것은 물폭탄을 이고 사는 것”이라고 지역민이 반발하자 남강댐 수위를 그대로 두고도 부산에 물을 줄 만큼 여유가 있다고 말을 바꿨다. 경남도가 여유수량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반박하자 지리산댐을 건설하여 수량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마저도 환경훼손과 용류담 등 수몰지역 확대가 우려되자 댐 규모를 축소하고 댐 성격을 단순히 홍수조절용으로 규정했다.

원칙도, 일관성도 없는 이런 정책추진으로 가뜩이나 민감한 물 문제에 대해 지역민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 계획대로라면 남강물 부산공급과 지리산댐 건설이 따로 논다는 것이다. 애당초 남강댐 수량으로는 부산에 식수를 공급할 수 없어 지리산댐 건설로 이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속내였다. 하지만 지리산댐을 홍수기에만 물을 가두고 건기에는 물을 흘려보내는 홍수조절용으로만 건설한다면 남강물 부산공급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본질적 문제를 덮어두고 ‘맑은 물을 마실 권리와 지역간 상생협력’ 운운하며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으로 외곽만 두드린다면 부산-경남간, 서부경남과 중동부 경남간의 감정의 골만 깊어질 수밖에 없다.

남강물 부산공급 문제는 국가의 수자원관리·식수정책과 연계된 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강물을 여과해서 식수를 공급하는 현행 식수정책을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유럽처럼 댐을 건설하여 식수를 공급할지를 먼저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댐 건설이 필요하다면 부산 물 공급과 남강댐·지리산댐과의 연계성, 비용편익 등 경제성, 환경훼손 최소화, 기술적 적합성 등 사업전반의 타당성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그 결과를 놓고 지역민을 설득하거나 계획 자체를 전면 수정하는 정책적 결단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국토부의 지리산댐 건설 입장을 두고 ‘비겁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정당당하지도, 솔직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홍 지사가 내놓은 해법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최소한 단순명료하고 솔직하다. 현재의 식수정책을 전면 재검토하여 댐 건설을 통해 식수를 공급하는 방향으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그와 상응하여 지리산댐을 식수댐 기능을 포함한 다목적댐으로 건설하여 남강댐 물을 중부경남과 부산에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 홍 지사의 기본 입장이다. 물론 이 주장에는 기술적·경제적 검토를 통한 타당성 입증과 지역민의 동의라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다.

남강물 부산공급의 해법은 딴 것이 아니다. 홍 지사의 주장처럼 정책의지를 분명히 하고 사업방향을 솔직하고 선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에 따른 타당성 검토가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찬·반 입장차가 분명해진다. 물 문제 같은 사회적 갈등은 숨기기보다는 드러내고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물 문제를 정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와 솔직함이다. 그 실천의 첫걸음은 정부가 내딛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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