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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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3. 사루마다 귀신들
그즈음 적진 가운데 포로로 잡힌 조선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왜군은 비열하고 악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이들을 이용하려 들었다. 아이들로 하여금 혹은 한양말로, 혹은 시골말로 성 밖에서 외치게 하였다.

“한양이 이미 함락되었고 팔도가 다 무너졌으니, 새장 같은 진주성을 너희가 어찌 지키리. 일찌감치 나와서 항복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오늘밤에 개산(介山)아비가 오면, 너희 세 장수 목을 당장 깃대 위에 매달 것이다!”

세 장수란 진주목사 김시민, 곤양군수 이광악 그리고 진주판관 성수경을 이르는 것일 게다.

망우당집(忘憂堂集)에 나와 있는 이광악의 인물됨은 가히 대인(大人)답다. 그가 의병 부장으로 있을 때였다. 김덕령과 홍계남이 좌우영(左右營)이 되어 동래에 이르렀는데, 날랜 김덕령과 용맹스러운 홍계남으로 하여금 적진으로 돌격케 하니, 기겁을 한 왜적은 멀리서 바라보고 바람같이 흩어졌다.

하루는 이광악이 배를 타고 있었는데, 왜적이 쏜 거위 알만 한 포탄이 뱃전에 맞아 배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자 모두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낯빛으로 담소하자 성 안의 왜적이 끝내 나오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성수경은 왜군이 쳐들어오자 격문을 돌려 충의지사를 불러 군세를 불리고 전투에 대비하였다. 특히 피난갔던 백성들을 다시 모아 끝까지 항전한 그의 전공이 돋보였다.

한편, 개산은 김해 사람이었다. 그 아비가 조일전쟁 초부터 왜적에게 빌붙어 성을 함락시키는 계책을 도운 인물이었다.

그런데 왜군 강압에 의해 조선아이들이 계속 성 안을 향해 소리치고 있을 그때였다. 마구 화를 내며 금방이라도 성 밖으로 달려 나가려는 사람이 있었다.

“저, 저놈을 내 당장……!”

“어디로 가려는 거요, 지금?”

다른 사람들이 급히 그를 붙들었다. 그가 몸을 빼내려고 애쓰며 외쳤다.

“어서 이 손들 놓으시오! 놓으란 말이오!”

성가퀴를 넘어온 세찬 강바람에 잎이 몇 개 남아 있지 못한 나뭇가지들이 속절없이 흔들거렸다.

“허, 왜적들에게 죽지 못해 환장한 거요?”

성내 공동우물터가 있는 곳으로부터 날아온 까마귀 한 쌍이 나목에 올라앉아 묵묵히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저놈들 하나라도 더 죽이고…….”

그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멈춰라! 무슨 일이냐?”

마침 전투태세를 점검하면서 지나가다 그 광경을 본 시민이 큰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에게 두 팔을 잡힌 그가 울부짖듯 고했다.

“장군! 이놈을 죽여주십시오.”

“내 칼에 동족의 피를 묻히라는 것이더냐?”

얼굴이 네모지고 얇은 입술이 부르튼 그가 고개를 조아리며,

“지금 성문 가장 가까이 와서 소리 지르고 있는 아이 놈이 제 자식 놈입니다. 장군께서 차고 계시는 그 칼을 뽑아, 자식을 잘못 키운 이놈 목을 당장 베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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