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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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3. 사루마다 귀신들
잠자코 그를 바라보던 시민이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다. 네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느냐?”

낙엽이 또 하나 졌다. 이제 몇 개 남지도 않은 잎새였다. 조만간 나무에 달린 잎을 구경하기는 어려운 날이 올 것이다. 바람에 가랑잎 굴러가는 듯한 소리로 시민이 천천히 말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 내 기어이 너의 자식을 네 품안에 안도록 해주마.”

“장군!”

그 사람뿐만 아니라 성내 사람들 모두가 오열했다. 나목에 앉아 있던 까마귀들이 ‘카악!’ 하고 한 번 울고는 성가퀴를 넘어 강 쪽으로 날아갔다. 시민도 고개를 뒤로 젖혀 흘러 내리려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바로 그때 성 안의 분노와 고통을 더욱 부추기려는 듯 성 밖으로부터 한층 큰소리가 들려왔다.

“한양이 이미 함락되었고 팔도가 다 무너졌으니…….”

성내 사람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청을 높여 꾸짖으려 하였다. 그러자 시민이 손을 들어 막으며 차분한 음성으로 명했다.

“상대하지 말라. 절대 말을 하지 말라. 괜한 데 힘을 쓸 필요가 없느니. 지금은 모든 걸 아껴야 할 때이다.”

왜군이 또다시 싸움을 걸어왔다. 수성군은 어리고 순진한 조선아이들까지 전투에 이용하는 적을 향해 이빨을 갈며 화살을 날렸다. 세상에서 저주와 분노보다 위력이 있는 무서운 무기는 없었다.

-겁먹지 말라! 우리에게 패전은 없다! 오직 승전만이 있을 뿐!

오늘도 어김없이 해는 서산머리에 지친 듯 걸리는가 했더니 이내 꼴깍 넘어가고 날이 어두워졌다. 인간들이야 무엇을 어떻게 하든 무심한 시간은 그렇게 곁을 스쳐갔다. 해가 진 하늘에서 임무 교대처럼 달이 뜨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이었다. 공성군과 수성군 모두가 일단 손에서 무기를 놓았다.

“오늘밤은 야간공격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진주판관 성수경이 굵은 목을 젖혀 하늘에 총총한 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별들이 내는 소리가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밤이었다.

“아무래도 수비하는 쪽보다는 공격하는 쪽이 피해가 더 많고 지치기 쉬운 법, 저놈들도 신의 군대가 아닌 이상 그럴 기력이 없겠지요.”

곤양군수 이광악이 칼집에서 칼을 뽑아 날을 점검하면서 말했다.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장검이었다. 그 칼끝에 묻힌 왜적의 피를 그러모으면 몇 동이는 될 것이었다. 시민은 적진을 노려보며 말이 없었다.

“우리 군사 수가 적의 절반만 돼도 당장 성문을 열고 달려 나가 모조리 참살해 버릴 것을!”

허리에 찬 칼집을 두드리며 하는 이광악 말에, 화살통에 든 화살 숫자를 헤아리고 있던 성수경이 호응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두고두고 한이 될 것 같소이다.”

그러자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시민이 입을 열었는데, 그 소리가 두 장수 귀에는 왠지 모르게 불길한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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