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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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3. 사루마다 귀신들
“여하튼 적도 우리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 터, 이대로만 가면 수성은 가능하리라 보오만, 전쟁이란 늘 돌발 변수가 생기는 법인지라 그게 가장 염려가 되오.”

개산아비가 그 목을 깃대에 매달 것이라는 세 장수의 크고 긴 그림자가 적진 쪽을 향해 칼이나 창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 시각, 왜군은 삼삼오오 피곤한 몸뚱이를 땅바닥에 눕힌 채 향수에 젖어 있었다. 흐릿한 달빛 아래 진주성은 낮에 본 성곽이 아닌 것처럼 비쳤다. 성벽이 아니라 천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 같았다.

“고향에 있으면 지금쯤 뜨뜻한 방에 드러누워, 오리궁둥이 같은 마누라 궁둥이나 두드리고 있을 텐데…….”

“꽥꽥거리는 자식새끼들 울음소리라도 듣고 싶구먼.”

“삼나무 아래서 사랑을 속삭이던 그 처녀가 그리워요.”

“우리집 개도 저 달을 보며 짖고 있을 거야.”

왜군들 마음이 그렇게 바다 건너 그네들 고국 땅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잠방이 비슷한 그네들 짧은 아래 속옷인 ‘사루마다’ 속을 뒤집어 이를 잡고 있던 얼굴 새카만 자가 귀를 쫑긋 세우며 물었다. 어, 저게 무슨 소리야?

일본 특산종인 삼나무 밑에서의 사랑에 대한 추억을 들먹이던 그중 젊고 야윈 자도 벌떡 몸을 일으켜 앉으며,

“조선군이 내는 소리 같아요.”

그러자 혹은 눕고 혹은 앉아서,

“혹시 조선 장수가 죽어 울리는 장송곡이 아닐까?”

“희망사항 같은 소리 하지 마. 아직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어디선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것은 분명히 피리소리와 거문고소리였다. 왜군들 눈이 자신도 모르게 일제히 소리 나는 곳을 향했다. 종소리도 크게 들렸다. 연지사종에 새겨놓은 비천상이 세상 밖으로 나와 악기를 켜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건 천상이나 지하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이날 낮에도 그렇게 혈전을 벌였던 진주성 쪽이었다. 탄알과 화살이 죽음의 사자(使者)처럼 오가던 진주성. 아직도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전쟁터 중심인 진주성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다니.

“조선 수성군 중위장 김시민은 요술을 부리는 신인(神人)이 아닐까?”

‘사루마다’에서 잡아낸 이를 손톱으로 꾹 눌러 죽이며 말하는 자의 음성이 그의 얼굴만큼이나 어둡게 들렸다.

“맞아, 맞는다고. 불사신이야, 불사신.”

야무진 몸매가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자가 말버릇인 양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나서 가래침을 돋우어 탁 뱉었다.

“우리가 고국에 있을 때 얼마나 숱한 전쟁을 치렀냔 말이야.”

음악소리를 듣고 놀라 일어나 앉았다가 맥없이 도로 드러누우며 구시렁거리는 자의 얼굴이 썩은 고구마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저 진주성 같은 난공불락의 성은 없었어.”

왜병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가 주름진 목을 절레절레 흔들며 하는 소리에 저마다 한마디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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