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9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9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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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3. 사루마다 귀신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라.”

그러나 온종일 전투에 지친 왜군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장강충흥의 안색이 노랗게 바뀌었다. 그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이것들 봐라? 내 말이 안 들려?”

그래도 반응이 없자 장강충흥은 발길질을 해대며,

“지금부터 할 일이 있다니까?”

소야목중승도 가까운 곳에 퍼질고 앉아 있는 부하 둘의 목덜미를 크고 투박한 두 손으로 우악스럽게 낚아 들어올리며 고함쳤다.

“요 모가지들을 그냥 콱!”

마침내 마지못한 듯 왜군들이 부스스 몸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투덜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시각에 무슨 일을 하라고…….”

“어디 조선의 밤귀신이라도 나타난 거야?”

“처녀 귀신이면 좋겠다. 무덤까지 따라가서 눕고 싶어.”

달이 막 진 뒤였다. 언제 나타났는지 소야목중승과 같은 1천의 병력을 지휘하는 가등광태와, 제일 적은 숫자인 1백2십 명을 휘하에 거느린 태전일길 등, 다른 왜장들 모습도 보였다. 장강충흥이 목 쉰 귀신이 내는 듯한 소리로,

“자, 그러면 모두 지금부터…….”

왜군이 어둠 속에서 도둑고양이같이 한 일은, 수성군 모르게 대나무로 엮은 발을 동쪽 성 밖에 세우는 것이었는데, 그 길이가 무려 수백 보에 뻗었다. 그들은 그 안에 판자를 벌려 세우고는, 빈 가마니에다가 흙을 가득 담아 여러 층으로 겹쳐 쌓았다. 그것은 마치 언덕 같았다.

“이제 우리가 성을 내려다보면서 총을 쏠 수 있게 되었다.”

인공 언덕을 올려다보며 가등광태가 말했다.

“조선군 화살도 능히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태전일길이 만면에 이기죽거리는 듯한 표정을 드러내었다. 흐흐흐. 장강충흥과 소야목중승은 어둠 속에서 마주보며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박쥐 같은 눈빛들이었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었다, 그 말이지? 이제 이 전투는 끝났다. 으하하핫!”

지휘부 막사 안에서 보고를 받은 장곡천수일은 김해를 떠나 창원을 향해 진군할 때의 그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며 팔뚝을 뽐내었다.

“하늘은 우리 편이다. 저 흙 언덕이야말로 하늘이 우리를 지켜줄 최고의 방패가 될 것이다.”

그곳에 같이 있던 왜장 목촌중자와 조옥무칙도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웃어댔다. 거기로 막 들어오던 다른 왜장 강본중정과 목촌정현 역시 이상한 귀신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조선군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간사한 꾀가 많은 왜군은 대나무 발을 높이 세워 수성군 시야를 철저히 막아놓고 은밀히 그 작업을 진행했던 것이다.

비차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재료로 없어서는 안 될 대나무가, 왜군들 손에서는 되레 조선군을 해치기 위한 은폐물로 둔갑을 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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