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경제의 초석을 다진 제임스 플레처
계약 건수가 늘어나고 사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활동 지역도 점점 확대되었다. 사업규모가 늘어나는 만큼 필요한 건축자재들도 늘어나게 되자 건축재료 및 벽돌공장, 채석장 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임스 플레처는 회사의 활동범위를 뉴질랜드 전역으로 확대시키면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였다. 블록과 타일, 철강제품 등 단순한 제조업부터 시작해서 1940년대에는 임업, 제재, 창호, 지붕 등 건축과 관련된 분야라면 가리지 않고 폭넓게 참여하였다. 이 무렵 뉴질랜드 경제는 유례 없는 번영을 구가하면서 국민 1인당 GNP가 호주를 능가할 정도였고 국민소득이 늘어나다보니 건축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게 되었다. 그런데다가 1935년에 노동당 정권이 승리하면서 플레처는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고 정부에서 처음으로 지원하는 국영 주택 건설에도 참여하게 된다. 그는 당시의 노동당 정권과 손을 잡고 많은 일을 추진하였다. 당시 경제장관이던 월터 낫시가 사회적으로 파급효과가 큰 공공주택 공급을 추진하는 책임보좌역에 지명하고 모든 일을 전적으로 일임하였다.
2차 대전 중에는 정부로부터 여러 가지 공식적인 직책들, 이를테면 국방건축물 위원회 위원, 국방시설 감독관, 조선사업 통제관 등으로 위촉받아 임무를 적극적으로 잘 수행하였다. 병영 캠프나 병원, 창고 등을 넉넉히 지어 태평양 전쟁 중에 미군 병사들이 잘 주둔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를 하였다. 한편 제임스 플레처는 사업가로서 다양한 사업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임페리얼 화학공업(ICI)을 위시하여 타스먼 펄프 제지회사, 뉴질랜드 제지공장 등을 운영하였다. 1940년, 국영지주회사인 플레처 홀딩스(Fletcher Holding Limited)를 설립하면서 제임스 플레처는 대표이사에 지명 받은 데 이어 1948년에는 초대 사장에 취임하게 된다. 플레처 홀딩스는 사업영역을 호주와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면서 새로운 분야에까지 확장시키는데 성공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타스만 펄프 제지 회사의 설립과 성공이다. 플레처는 1952년 이 회사 설립 당시 사장에 취임하였다가 1965년에 은퇴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1946년, 그의 나이 60세에 뉴질랜드 정부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그의 공적을 기리며 기사작위를 수여하였다. 평범한 목수였던 제임스 플레처는 사업가로서의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을 뿐만 아니라 도전정신이 강했으며 대단한 노력가였다. 그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 성실히 수행해냄으로써 신용을 쌓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던 뉴질랜드 산업계의 상황과 기회를 잘 활용하였다. 정치세력과의 연계는 자신에게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었고 정부의 복지정책에 적극 협조하면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대해나갈 수 있었다. 제임스 플레처는 뉴질랜드 경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든든한 초석을 다져놓고 1974년 향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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