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이순신의 점(占)
<이준의 역학이야기> 이순신의 점(占)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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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이 흥행돌풍을 일으켜 8월 24일까지 1625만7327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관객을 동원함으로써 한국영화 사상 전무했던 기록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키워드는 ‘이순신 장군’이다.

역사의 궤적을 가만히 살펴보면 시대가 질곡의 나락으로 곤두박질할 때마다 하늘은 성현이나 성웅을 보내어 시대를 구해 왔다. 나라가 평온할 땐 명문 가문의 자손이라 거들먹거리며 뽐내고 훌륭한 학풍을 자랑하며 이름을 날리고 활개 치던 자들은 위기가 닥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추풍낙엽 날리듯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없어져 버리고, 충직한 충신만 홀연히 국난에 맞서 싸워 나라를 구해 왔다. 이를 두고 공자님은 ‘서리가 내리는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구별된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논어, 자한)’라고 하였던가.

그러나 시대를 구한 성현·성웅의 인생여정은 정작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역경이 처참한 인고(忍苦)로 점철되어 있다. 이순신의 삶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순신은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올바르고 강직한 성품 때문에 숱한 시기와 질투와 모함으로 곤경에 처해진다. 그의 성품과 비범한 능력을 어릴 적부터 알아본 형의 친구이자 동네 형님인 서애 유성룡의 추천으로 이순신은 정읍 현감(종6품·오늘날 사무관 또는 중위 대위 정도의 직급)에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정3품·지금의 관리관, 소장 정도 직급)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관료조직의 엄청난 저항을 받게 된다. 역설적으로 선조의 인재난과 유성룡의 영향력이 지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량해전 전날 밤에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일러 주었다라고 이순신은 일기에 적고 있다. 꿈속에서도 전쟁걱정이었다. 이순신은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卽生 必生卽死)’라는 병법서에 있는 말로써 호소하여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그리고 크게 이긴 명량해전 당일의 전투상황을 생생하게 일기에 적은 다음 이렇게 마무리한다. ‘이번 일은 참으로 천행(天幸)이었다.’ 정유년 9월 16일 갑진(양력 1597년 10월 26일) 맑음.

이순신은 전쟁 중에 자주 ‘점(占)’을 쳤다. 장군의 일상을 보면 장군은 몸과 마음이 심히 괴로운 데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먼저 늘 인근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고,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적진의 동태를 파악하였으며, 산천과 바다의 지형지물의 형세와 변화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군사와 병기를 점검하여 만반의 준비를 다하였으며, 인근 고을의 현감·군수들과 늘 긴밀하게 이야기하고, 그리고 최종적 결단의 방식으로 점(占)을 쳤다. 한가할 때 심심풀이로 점을 쳤던 것이 아니라 꿈에 신인이 나올 정도의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의 뜻을 알고자 점을 쳤다. 왜적이 나올지, 길할지 흉할지 앞날을 알 수 없어 주역점, 글자점, 대리점, 꿈 해석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전황을 알고자 하였다. 아울러 백성 위무, 군비점검, 전략전술을 게을리 하지 않고 전쟁에 치밀하게 대비하였다. 점은 최종적 결정방법이다.

주역의 계사상은 시대와 세상과 공간과 사람을 파악하는 방법론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한다(易有聖人之道四焉). 첫째는 언어적 방법론이다(言). 말(辭)을 통한 사회적 접근방법이다. 교언영색이나 미사여구뿐만 아니라 언어, 사유방식, 개념, 논리구조, 프레임, 경청과 화법 등 말에 관한 다양한 방법론이 여기에 해당된다. 핵심은 사람뿐만 아니라 하늘도 공감하여 마음을 통할 수 있도록 말을 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以言者尙其辭). 둘째는 변화의 추이를 중시하며 살펴서 대응하는 행동주의자적 방법론이다(行). 자연과학자들은 자연계의 모습에서, 사회·역사학자들은 사회 및 역사의 전개에서 변화의 법칙을 찾아낸다(變). 각종의 여론조사, 수요조사, 미래예측을 위한 통계조사 및 선형적 방법론 등이 여기에 속한다(以動者尙其變).

셋째는 도구적 방법론이다(制器). 우주선, 비행기, 자동차, 선박, 스마트폰, 빌딩, 옷, 가구, 음식, 의약품 등 과학문명과 일상 생활물품들을 연구 발명 생산하는 방식이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이 인간의 사유방식과 삶과 생활태도를 변혁시켜 왔음을 우리는 과학문명사에서 확연하게 알 수 있다(以制器者尙其象). 마지막으로 점을 치는 방법이다. 장군의 점은 개인의 부귀영달과 길흉화복을 위한 점이 아니었고, 국난을 극복하여 백성의 안녕을 도모하려는 국태민안의 점이었다.

물론 정약용이 그의 가운데 형 약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제 시대가 다르니 ‘점을 치지 않는다’라고 한 말에도 묘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국제정세, 경제위기, 유병언 세월호 사건, 고위층 인사들의 일탈행위, 북한의 핵위협, 흩어진 민심 등을 생각해볼 때 이 나라가 어디로 굴러갈지 점괘라도 뽑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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