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뜨거웠던 10대의 기억…‘야간비행’
그 뜨거웠던 10대의 기억…‘야간비행’
  • 연합뉴스
  • 승인 201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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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비행’은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들의 축소판인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된 선생님이 등장하고, 왕따와 폭력이 난무한다. 비정하고, 잔혹하다. 그처럼 숨쉬기조차 어려운 환경 속을 소년들은 사랑에 기대고, 우정에 의탁해 버틴다.

우등생 용주(곽시양)는 왕따인 기택(최준하)과 함께 위태로운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왕따를 주도하는 반장 성진(김창환)이 틈만 나면 기택과 함께 다니지 말라고 용주를 협박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기웅(이재준)은 ‘학교짱’이 돼 성진과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를 좋아하던 용주는 어느 날 기웅에게 자전거를 빼앗기고, 자전거를 되찾으려는 용주는 기웅의 주위를 배회한다.

영화는 용주의 시점을 따라간다. “이성애자를 사랑하는 건 독”이라는 후배의 말에도 용주는 기웅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기웅은 그런 용주를 처음에는 거부한다.

영화에서 둘의 사랑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용주에게 기웅이 사랑인 건 분명하지만, 기웅의 사랑이 우정인지 사랑인지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도 넓은 의미의 우정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용주와 기웅의 미묘한 관계도 있지만 학교 폭력의 무서움도 이 영화를 꿰뚫는 또다른 소재다. 성진이 주도하는 폭력은 선을 넘는다. 기택에 대한 폭력과 용주에 대한 폭행 장면은 스크린을 외면하고 싶게 만든다.

피해를 보는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지 못하는 교사들과 형사들에 대한 비판의 시선은 날카롭다.

“친구가 왕따를 당한다”는 용주의 말에 “그런 거 신경 쓸 때냐”는 담임의 면박은 “네가 게이든 뭐든 상관없다. 서울대만 가라”는 발언으로까지 이어진다. 게이들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하는 학생 주임의 발언, 왕따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도 무용한 상황 등 누구 하나 도움을 주지 않는 탈출구 없는 고교생활의 힘겨운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마흔이 훌쩍 넘었음에도 틈만 나면 찾아왔다가 허망하게 떠나는 사랑 탓에 마음이 늘 허전한 용주의 엄마, 노조 활동을 벌이다 오히려 노조원에게 왕따를 당한 기웅의 아버지 이야기도 희망없는 고교 생활의 배경처럼 펼쳐진다.

안팎으로 팍팍하고 어려운 삶을 위로하는 건 역시 사랑과 우정 같은 원초적인 감정일 수밖에 없다.

어느 무더웠던 밤 그 집앞에 기억, 살랑이는 바람과 순수한 고백, 그리고 상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전력질주로 내달렸던 추억….

현실은 지옥도지만 때론 그 지옥도 뚫고 나오는 낭만의 힘이 영화에 청량감을 준다. 자주 흐르는 주제곡 ‘이프 아이 룰드 더 월드’(If I ruled the world)는 상영관을 나와도 오랫동안 마음속을 맴돌 듯하다.

퀴어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 온 이송희일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상업영화적인 이야기에 퀴어적인 감수성을 깊이 있게 얹은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베를린국제영화제·홍콩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받았다.

8월28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상영시간 1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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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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