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1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1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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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1. 둘 그리고 넷
“아니 되오, 당신은. 이건 엄청 위험한 일이오. 당신은 지금 홑몸도 아니고…….”

그러나 정평구는 은근히 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면 네 사람이 딱 맞기는 한데…….”

둘님이 고집을 피웠다.

“위험하다니 더 함께 타고 싶어요.”

지금 둘님에게서 광녀는 찾을 수 없었다. 봄날 보리밭 위에서 지저귀는 종달새 같은 목소리를 내던 둘님만 있었다.

“당신 혼자 잘못되면, 전 살아갈 수가…….”

조운이 세차게 고개를 내젓는데 정평구가 말했다.

“광풍만 불지 않는다면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광풍이 불면 추락하겠지만……. 양각풍(羊角風), 그러니까 회오리바람이 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게 비차이긴 하고요. 하지만 그런 바람에는 아예 비차를 띄울 수가 없으니 아무 문제가 될 것도 없고, 그 밖에는 뭐 별로…….”

여보. 둘님이 남편을 불렀다. 조운은 아내를 외면해버렸다. 그러자 고개를 돌린 그쪽에 또 다른 아내가 보였다. 그녀 뱃속에 든 아이도 투명한 물고기 뱃속에 든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없소. 지금 전쟁이 한창이니 빨리 결정을 내리도록 합시다.”

정평구가 매몰찬 빚쟁이처럼 독촉했다.

“입에 올리기도 싫은 소리지만, 행여 이러다가 성이 함락돼버리기라도 하면, 그때는 비차도 아무 쓸모가 없을 게 아니겠소?”

“비차도 아무 쓸모가 없…….”

정평구의 마지막 말이 조운의 가슴 한복판을 강하게 찔렀다. 사실 그의 말대로 왜군에게 언제 성이 무너질지 모르고, 그렇게 되면 시민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를 것이니, 한시라도 빨리 비차를 타고 가서 그를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완전한 비차는 아니지 않은가?’

그랬다. 애초에 설계한 대로 네 사람을 태우고 안전한 이륙과 비행 그리고 착륙까지를 완벽하게 성공해야만 실행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임신한 둘님을 태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면 차라리 이대로…….’

조운 자신과 정평구 두 사람이 동승하여 성공을 했으니, 그들 중 한 사람만 비차를 타고 가서 성주(城主)를 태우고 탈출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면 두 사람만 타게 되니까. 아니다. 단 한 번의 시험비행 결과만 믿고 위기에 빠진 조선을 건질 소중한 귀인을 섣불리 태웠다가 실패하게 되면 모든 게 끝이다. 넷이 타고 안전성을 확인해야 된다.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또 한 번 더 시험비행을 해보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몰라도 일단 두 사람의 동승은 성공을 했으니, 좀 더 믿을 수 있고 안전한 것은 두 사람이 타고 나는 것일 수도 있다 꼭 처음 설계를 고수해야 할 생각을 하는 건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처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오히려 적은 인원을 태우는 것이 더 비차에 무리를 주지 않을 것이니 한층 안전하지 않을까.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라면? 아, 어쩌면 좋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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