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1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1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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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2. 칼춤, 그 붉은 마음
처음 부임할 때부터 시민은 그 고을이 고향 못지않게 마음에 들었다.

그가 벼슬길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숙부 김제갑도 거쳐 간 거기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싶었다. 그 고장에는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았다. 시민이 또 흥미롭게 들은 이야기는, 이곳에도 유명한 저 검무(劍舞)가 생긴 유래였다.

“아, 우리 칼춤에 그런 슬픈 사연이 있었다고?”

“예, 목사 영감.”

그곳 교방(敎坊)에서 가장 검무를 잘 춘다는 관기인 홍여는, 벌써부터 은근히 시민을 마음 깊이 두고 있었다.

“정말 가슴 아픈 사연이 아니옵니까?”

시민으로 인해 제 가슴도 아픈 홍여는 재색을 겸한 관기였다. 특히 검무에 관한 한 그녀를 따라갈 사람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시민에게 들려주었다.

신라 화랑 관창은 검무를 아주 잘 추었다. 하지만 백제군 정찰을 나갔다가 그만 계백에게 사로잡혀 죽었다. 그래 신라 병사들에게 관창의 탈을 써서 칼춤을 추게 했더니 사기가 높아졌다. 황산벌 전투에서의 신라 승리는 그 덕분이었다.

또, 고서(古書)에 따르자면, 역시 신라 소년인 황창랑이 일곱 살 때 백제 궁중에 들어가 칼춤을 추는 척 하다가 백제왕을 찔러 죽이고 그 자신도 죽었다. 슬프고 가슴 아파한 신라인들이 황창랑의 얼굴을 본떠 탈을 쓰고 그의 영혼을 위로했다. 그게 검무의 시초였다.

“그런 칼춤이니 더 잘 춰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당연한 말이로다.”

연정을 품은 떨리는 가슴으로 무언가 총애의 말이 내리길 기대하고 있던 홍여의 귀에 떨어진 소리는 그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건조한 음색이었다.

“차라리 이 몸도 그렇게 죽고 싶사옵니다.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게 한이 되옵니다.”

“남자로 말이더냐? 물론 전쟁이 일어나면 더 큰 피해자는 남자보다 여자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조국을 넘보는 외적을 물리치지 못할 때의 그 고통과 갈등은 무슨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홍여 가슴이 끌로 파듯 쓰라렸다. 그때 시민의 얼굴은 살아 있는 사람의 그것 같지가 않았다. 지독한 자기혐오와 무기력감 그리고 안타까움으로 뒤범벅이 된, 손만 갖다 대면 오래되어 삭은 창호지같이 금방 부스러지고 말 듯한 얼굴이었다.

“검무를 춰 보이오리까?”

그때 홍여가 해보일 수 있는 말은 그 한 가지뿐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 또한 여전했다.

“아니다. 그럴 힘이 있으면 오직 왜놈의 목을 베는 데 써야 마땅할 터, 본관 하나의 흥취를 위해 허비해 버릴 수는 없느니.”

홍여는 푸슬푸슬 부서져 내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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