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꽃잎 차
코스모스 꽃잎 차
  • 경남일보
  • 승인 201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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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 수필가)
어느새 가을 깊습니다. 가을을 상징하는 것들이라면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코스모스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집을 나서면 아주 쉽게 코스모스를 만납니다. 들길에서는 물론이고, 도로변에서도, 남강둔치에도 붉고 하얀 코스모스 꽃들이 피어 보는 이들의 눈길만 아니라 바람까지도 붙잡습니다.

우연히 코스모스 꽃잎 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옳다구나 싶어 그 꽃잎들을 몇 줌 따가지고 와 씻어서 팬에 면보를 깔고 그 위에 코스모스 꽃잎을 하나하나 펴서 은은한 불에 덖다 식히고를 아홉 번 해야 말 그대로 차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정성들여 만들어진 차를 마주할 이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이 한 잔의 차를 우려내고 거기 가을을 담아 취해보려 합니다.

하고보니 올 가을에는 많은 사람들이 술잔 보다는 찻잔을 가까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꼭이 꽃잎 차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똑같이 마시는 것임에도 술과 차는 서로 상반되는 성질을 지녔습니다. 양자(兩者)는 다분히 동적(動的)이고 정적(靜的이며, 그러기에 사람을 격정적이게 하는가 하면 반대로 차분하고 조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근자에 체육계에서 중책을 맡고 있던 전 탁구선수가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물의를 빚고 직책에서 물러난 바 있지요. 물론 그것은 공인으로서도 그렇지만 한 개인으로서도 잘못이고, 그런 만큼 책임을 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넓게 본다면 그도 우리나라의 잘못된 술 문화의 피해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문화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던 우리의 농경사회에서는 술 문화도 지금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변하게 된 것은 급속한 사업화를 거치면서였지요. 불과 몇 십 년 동안에 이루어진 산업화에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그걸 출세와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소위 인맥관리를 위해 어울리고 술을 마셔야 했던 게 아닌가요. 말하자면 술을 마셔야만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단적으로 말해 죽기 살기 식으로 마셔야만 살아남고 줄 잘 잡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굳어져서 오늘의 술 문화가 된 것일 터이고요.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그 술 문화에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술 없는 대학 축제도 생겨나고, 멋진 이벤트 행사로 술만 마셔대던 망년회를 대신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접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잘못된 술 문화는 깊게 뿌리내린 채 곧잘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더러는 몹시 안 좋은 소식도 전해옵니다.

오늘은 그들에게 차 한 잔씩 대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몇 번 더 둔치에 나가 남강 물빛을 닮았을 코스모스 꽃잎들을 따다가 씻어 차를 덖어야겠습니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덖은 코스모스 꽃잎 차를 대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미야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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