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언제 지낼까
제사를 언제 지낼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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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 (반성중학교장)
일생은 숨을 쉬는 시작부터 멈추는 사이의 시간이다. 사람마다 태어나는 시점이 달라 하루 단위로 생일을 하고 있다. 태어남은 순서가 있고 죽음에는 그렇지 않다는 자연법칙을 잘 알고 있지만 누구나 그날을 피하고 싶어 기일(忌日)이라 한다.

보통 사람의 생일은 가까운 사람들과 모여 식사하면서 보내지만 첫 생일을 돌이라 하여 특별하게 축복하며 행사를 곁들이고 있다. 돌잔치를 태어난 시점에 시작하기보다는 축하객이 모이기 수월한 일과 후에 집이나 식당 등에서 열린다. 돌상에 장수를 기원하는 백설기와 실타래 또는 재물을 상징하는 돈이나 곡식 또는 책, 스마트폰, 골프공 등을 펼쳐 놓고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장래를 좁혀보며 즐겁게 보낸다.

기일에는 어떤 행사가 있는가. 고인을 추모하는 기제사(제사)이다. 제사는 본격적으로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는 농경시대라 절기를 놓치지 않고 씨를 뿌리고 모내기에다 추수하는 작업에 많은 일손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대가족 생활을 하게 되었고 품앗이를 통한 이웃과 유대관계를 돈독히 한다. 가족 간의 질서는 효를 기본으로 유지되었는데 제사를 통하여 실천되었다. 제례가 끝나고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어른들을 대접하는 풍습은 마을의 화목을 돈독하게 하였다.

기일을 하루 앞두고 가족 친척들은 제수를 준비하여 큰집에 모여 음식을 장만하고 저녁에는 고인에 대한 회고담에 집안 대소사 의논과 자녀교육 및 정보교환을 하다 자정 지나 절차에 따라 거행되는데 제사를 기일 새벽 첫닭이 울기 이전에 모셨다. 이 시간대는 음기가 강하여 신위가 활동하기 좋고 하루 중 가장 맑은 때 고인을 모신다는 의미이다.

요즘은 농촌 인구의 분산과 저출산으로 제객이 급감되었고 직장따라 생활하여 모이기 어렵다. 이 같은 사회구조로 0시 이후에 제사를 지내면 진설에서 음복하고 제기를 정리하기까지 소수의 인력으로 긴 시간이 소요되며 새벽 운전 등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근무가 힘들다 등의 이유로 분위기 차가운 가족모임이 되고 있다. 제사 지내는 시점의 조정은 시대적 요청이라 할 것이다.

퇴계 이황 선생의 종가는 내년부터 기일 새벽에 지내던 퇴계 선생의 불천위 제사를 오후 6시로 전환하기로 했다. 문중운영위에서 퇴계 선생의 그 시대 풍속을 따르라는 가르침에 따라 제사 간소화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예법을 정립한 분이 퇴계인데 종가가 이를 저버릴 수 없다고 주장하던 일부 위원도 시대의 흐름에 따르겠다고 하여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일간지에서, 살아 세계적 기업을 이룩한 왕회장의 기일이 돌아오자 회장, 현역 의원, 부회장 등 후손 40여명이 기일을 하루 앞둔 저녁 7시부터 한 시간가량 제사가 진행되었고 기일에는 추모행사를 가진다는 기사를 냈다.

생일은 이승에 오고 기일은 저승에 가는 날이다. 기일의 하루 앞날에 제사를 모시는 것, 잘못이라고 하겠는가. 그렇지만 제사 본래 의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제사를 언제 지내느냐’라는 학생의 예상질문에 자료를 준비해야겠다.
안명영 (반성중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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