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홍대용과 1766년’ 출간
신간 ‘홍대용과 1766년’ 출간
  • 연합뉴스
  • 승인 201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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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北伐)을 주창했던 우암(尤庵) 송시열(1607~1689)의 후예답게 화이관(華夷觀)에 젖어 살았던 조선의 지배층 노론.

정통 노론 가문에서 태어난 담헌(湛軒) 홍대용(1731~1783)도 이 같은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명(明)을 숭상했고 청(淸)을 무시했다.

홍대용도 다른 노론 가문 출신들처럼 “청의 중국 지배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넓은 청의 땅을 밟으면서 그가 지녔던 확고부동한 노론적 사유체계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건물은 으리으리했고 사람은 넘쳐났다.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물산도 풍부했다. 수레와 선박의 효율성도 눈에 띄었다. 요동벌의 광활함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곧은 성품과 회의하는 정신이 있었던” 홍대용으로서는 그의 학문적 DNA에 뿌리깊게 박혔던 ‘화이관’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청의 번영을 일군 강희제의 검소함과 옹정제의 탁월한 정치적 감각도 깊이 사유해야 했다.

그렇게 한양에서 북경으로 가는 56일, 그리고 북경에서 머문 61일은 홍대용에게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의 계기가 됐다.

한문학자 강명관이 쓴 ‘홍대용과 1766년’은 홍대용이 쓴 연행록(燕行錄) ‘연기’와 ‘을병연행록’을 통해 강고한 사대주의자였던 홍대용이 어떻게 북학자로 변모하게 됐는지를 포착한 역사 해설서다.

책에는 홍대용이 중국을 직접 다녀오면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전율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 상당하다.

“같은 하늘 아래 이런 큰 세계가 있을 줄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38쪽)

노론의 후예였던 그에게 “오랑캐가 통치하는 중국이 번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었다.

그러나 청나라의 부흥을 직접 목도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북벌이 아니라 북학(北學)의 필요성을 주장하게 된다.

책에는 홍대용이 오키나와인, 몽골인, 위구르인, 러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뿐 아니라 그들과 나눴던우정의 기록들도 충실히 담았다.

한국고전번역원. 264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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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과 1766년 표지
홍대용과 1766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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