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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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2. 메아리 없는 절규
날은 흘러갔다.

그래도 세상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건 기적이었다. 아니다. 허위요, 기만이었다. 하루인지 닷새인지 반나절인지 조운은 시간감각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그 자리에 딱 멈춰 서버렸거나 화석처럼 굳어져버린 것 같기도 했다.

“카옥! 카오옥!”

머리털이 쭈뼛 곤두설 만큼 텅 빈 가마못 안쪽 마을에 유난히 시커먼 까마귀 무리의 울음소리만 낭자했다. 그 소리는 동편에 거인처럼 우뚝 서 있는 비봉산 자락에 부딪혀 남강 발원지가 있는 먼 북서녘 하늘가로 속절없이 흩어져갔다.

“큭! 카르릉!”

간혹 주인이 급히 피란을 가면서 그냥 내버려두고 간 비루먹은 개가, 앓는 소리인지 짖는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은 이상야릇한 소리를 내면서 폐허가 된 동네를 비칠비칠 쏘다녔다. 그나마 누구 눈에 띄지 않은 게 다행일 것이었다. 모두가 쥐라도 잡아먹을 정도로 허기져 있어 당장 솥에 안쳐질 신세가 되고 말 테니까. 특히 왜군들에게 발견되면 ‘니뽄도’에 의해 산채로 껍질이 벗겨질 것이었다.

“집이 없어졌다고 그만둘 우리가 아니잖소.”

“지구가 멎어도 이 일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조운과 정평구는 분지의 한쪽 공터에 허름한 천막을 치고 임시 거처로 삼았다. 불을 지피지 못한 바닥은 그야말로 냉방이었다. 천막 틈새로 솔솔 끼쳐드는 외풍이 너무 심해 둘 다 감기 몸살에 시달렸다. 손발은 찬데 머리는 열이 심해 지끈지끈 아팠다.

“강형, 내 말이 너무 잔인하다고 섭섭해 하지 마시고…….”

“아닙니다. 제 옆에 계셔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부모님을 따라…….”

“나보다도 그 보묵 스님이란 스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고인들은 보묵 스님, 아니 부처님께 의탁하기로 했다. 그러자 바늘구멍만큼이라도 숨은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철천지원수를 갚는 일뿐이었다. 눈에는 불덩이가 이글거렸다. 가슴에는 독을 찼다. 얼마나 질끈 깨물었던지 부르터진 입술에는 검붉은 핏물이 말라붙었다. 복수의 화신들이었다.

그런 가운데 조운은 자기 몸을 자기가 때리며 울었다. 아무 데나 머리를 부딪치며 간질을 앓는 사람같이 뒹굴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소리 질러댔다. 그 고함소리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를 쩌렁쩌렁 울렸다. 미완성의 비차들이 놀라 있는 대로 몸을 웅크리는 것 같았다. 비봉산이 폭삭 내려앉고 가마못이 확 뒤집힐 정도였다. 정평구는 사방을 돌아보며 가슴이 서늘했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듣고 왜군이 올 테면 오라는 자포자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운이었다. 어쩌면 조운은 누가 자기를 죽여주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다. 죽기보다 쉬운 것은 없다.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을 보면 알 게 아니냐? 개털처럼 쓸모없는 목숨일지라도 산다는 게 어려울 뿐. 내 할 일을 모두 끝낸 후에 비차와 더불어 세상을 뜰 것이다.’

그러자 조운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또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보자. 비차 비차 비차다. 진주성에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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