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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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3. 기녀(妓女)를 추천하다
조운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비차가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이제부터는 더더욱 비차만이 그의 전부였다. 시민이 화를 당하기 전에 비차를 타고 성 안으로 날아 들어가 구해내야 했다. 시민이 있음으로써 이 고을이 살고 조선이 산다. 또한 그것이 곧 왜놈들에게 진 빚을 되갚는, 양가 어른들의 한을 푸는 복수의 길이었다. 그러나 의욕과 증오심에 앞서 또다시 복병처럼 달려드는 설움과 통한의 눈물…….

비차의 노래를 열 번 백 번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막상 다시 비차에 달라붙으려고 하니 그게 생각대로 되지를 않았다. 망가진 비차를 다시 보는 순간, 조운의 마음은 또다시 슬픔과 분노로 들끓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두 번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게 비차였다. 모든 소중한 것들을 그에게서 앗아가 버린 비차였다. 조운은 가슴이 터져라 속으로 저주 퍼붓듯 외쳤다.

-비차, 너와의 영원한 이별을 선언한다!

-네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냐? 천하에 못된 것!

조운은 비차 옆을 떠날 사람같이 비쳤다. 그는 이미 그가 아니었다. 무언가에 점령당한 헛껍데기 인간 같았다. 악령의 포로? 천재의 광기? 그리고 그런 조운을 옆에서 속수무책 지켜보며 정평구는 바짝바짝 애간장만 타들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언제 성이 함락되어 김시민 목사가 왜군들에게 죽을지 모르는데, 조운 저 사람은 비차에서 손을 떼버릴 사람같이 보이고……. 그렇다면 나 한 사람이라도 비차 완성에 진전을 보일 기술을 터득해 내야 할 텐데 그것도 안 되고…….’

그것은 마치 새가 한쪽 날개를 상하게 되면 나머지 날개도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과도 흡사한 이치였다. 그랬다. 그들 두 사람은 비차의 양 날개와도 같은 사람들이었다. 양쪽 바퀴와도 같은, 비차 머리로 치면 각각 반쪽 머리와도 같았다.

‘아, 결국 여기서 중단되고 마는 걸까? 애당초 불가능한 일을 시작한 것부터가 이미 정해진 불행인지도 모른다. 충청도 노성의 윤달규도 비차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헛된 소문이었을 뿐. 그래, 인간이 하늘을 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망상인 것을.’

그처럼 조운뿐만 아니라 정평구조차도 제 자리를 바로 찾지 못한 채 그저 허둥거리고 있을 때였다. 또 보묵 스님이 그들을 찾아왔다. 양가 부모는 아직 49재(齋) 중이었다. 그는 여전히 깡말랐고, 그에게서 나는 마른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그대로였다. 그는 세상일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것 같았다.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하늘을 나는 기구가 드디어 완성돼 가는 모양이지?”

조운은 말이 없고, 잠시 망설이고 있던 정평구가,

“그렇습니다, 스님. 모든 게 다 잘되었습니다.”

“내가 오면서 멀리서 이 동네를 보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어. 하지만 중요한 일을 위해선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는 법. 부처님의 더 크신 가호가 내리시기를!”

보묵 스님 염불소리에 조운은 조금씩 이성을 되찾고 있었다. 정평구가 보묵 스님에게 합장을 한 후 다시 손상된 비차를 손보기 시작했다. 보묵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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