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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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3. 기녀(妓女)를 추천하다
“무어라? 관기 홍여가?”

총지휘소인 촉석루에 혼자 앉아 왜적을 막을 병법에 골몰하고 있던 시민은, 숨차게 달려와서 보고하는 참모의 얼굴을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거인 다리같이 굵은 누각 나무기둥도 흔들, 하는 듯했다.

“모두가 감탄과 칭송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약간 튀어 나온 광대뼈가 강인한 인상을 주는 제갈 부관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시민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명했다.

“지금 즉시 나를 그곳으로 안내하라.”

제갈 부관은 바람소리 나게 휙 몸을 돌려세웠다. 시민은 그를 따라 발길을 옮겼다. 흔들리는 발걸음처럼 마음도 자못 흔들렸다. 오로지 사랑에만 눈 먼 기녀인 줄 알았던 홍여가 그런 일을……. 민, 관, 군이 하나가 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윽고 시민이 다다른 곳은 성의 서북쪽으로 둘러쳐져 있는 성가퀴 부근이었다. 시민은 그 장소임을 알자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아, 여기는 내가 취약지구로 가장 우려하고 있는 그곳이 아니냐?’

그랬다. 거기는 해자(垓子) 역할을 하는 대사지의 서쪽 끝이 구북문 아래까지 닿지 못하고 끝나 있는 탓에 수성에 어려움이 많은 지점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놀랄 일이로다! 일개 기녀의 신분으로 어떻게 웬만한 장수들도 모를 그런 사실까지 꿰뚫어보고 있단 말이더냐?’

시민은 해자를 건너는 진주성의 해자교(橋)인 신북문교와 남문외교를 바라보며 경악을 넘어 차라리 혀라도 차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다면 저 서북쪽에 참호를 파고 물을 담아 부족한 점을 보강할 수도 있으련만 이제는 때가 너무 늦었어. 왜적이 성을 포위하기 전에 미리 대사지의 길이와 너비를 늘여 좀 더 확장하지 못한 게 후회를 넘어 한이 되는구나.’

그런 한탄과 아쉬움을 억지로 삼키며 시민은 충직한 참모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곳에는 그의 보고처럼 홍여가 남자 복장을 하고 성민들을 격려해가며 왜구를 막을 무기들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 그만두게. 방해하지 말고.’

제갈 부관이 홍여에게 다가가 시민의 행차를 알리려고 하는 걸 시민은 얼른 눈으로 막았다. 홍여는 시민이 와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부지런히 가냘픈 몸을 움직이면서 한편으로는 성민들에게 말하기 바빴다.

“성 안에 있는 돌과 짚을 있는 대로 모아야 할 거예요.”

“펄펄 끓여 왜놈들에게 들이부을 물이 부족해요.”

“우리 여자들도 치마 대신 저처럼 바지를 입으세요.”

홍여가 시민을 알아본 것은 한참 후 배꽃같이 새하얀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느라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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