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인생]'두산도예' 강효진씨
[외길인생]'두산도예' 강효진씨
  • 박준언
  • 승인 2014.10.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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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숨결' 찾아 나선 도자기 인생
두산도예 강효진씨
김해시 진례면에서 ‘두산도예’를 운영하고 있는 강효진씨
그는 가야토기 재현의 명인이다.
강효진씨가 재현한 기마인물토기
‘두산도예’ 강효진씨가 금관가야인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기마인물토기를 재현한 작품들.


‘2000년 전 숨결’ 재현한다



“도공의 정성이 반이면, 나머지 반은 자연이 창조합니다.”

흙과 불 그리고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도자기 하나가 탄생한다고 장인(匠人)은 말한다.

김해시 진례면 송정리에서 ‘두산도예’를 운영하고 있는 강효진(63) 씨. 강효진 씨 가족은 선친 강병희 씨로부터 3대째 내려오는 도예인 가족이다. 4남 2녀인 강씨 가족은 장남인 그를 비롯해 5명이 도예인의 길을 걷고 있다. 또 강씨의 자녀 3남매 중 두 아들과 조카들까지 모두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이들은 전국에서도 그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소문난 도예인 가족이다.

“옹기를 구우셨던 선친 덕에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흙과 함께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어릴 적에는 흙이 장난감이었고, 40년 넘게 도자기를 굽고 있는 지금 흙은 저에게 주어진 숙명입니다.”

강씨는 두산도예에서 분청사기(粉靑沙器)와 가야토기(伽倻土器)를 제작하고 있다.

2000년 전 김해 땅에 살았던 가야인들은 토기를 빚었다. 그들이 만들었던 토기가 찬란한 꽃을 피워낸 것이 분청도자기다.

“분청도자기는 도공 스스로 창작해낸 소박하고 솔직하면서 회화적입니다. 경기도 이천의 청자·백자, 전남 강진의 청자와 달리 서민적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정서가 가장 잘 묻어난 도자기로 볼 수 있지요.”

분청도자기는 분장회청사기의 준말로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이 일본인이 부르던 미시마(三島)라는 명칭을 백토분장과 회청색의 특징을 근거로 명명했다. 분청은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인 15, 16세기에 번성했으나 임진왜란 이후 다완을 중심으로 한 ‘김해분청’의 맥이 완전히 끊어졌다.

김해에서 터를 잡고 분청도자기에 매진하던 강씨는 옛 금관가야에서 생산된 가야토기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됐다.

강씨는 지난 2009년 (사)대한명인문화예술교류회로부터 ‘가야토기 분야 명인(名人)’으로 선정된 장인이다. 2000년 전 가야 멸망과 함께 사라진 ‘가야토기’를 현실에서 재현하고 있는 강씨는 이 분야의 독보적 존재다.

국립 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국내 박물관과 중요 장소에 설치된 가야토기는 대부분 강씨의 작품이다. 특히 가야나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TV사극 드라마에 사용된 그릇들은 그의 작품인 경우가 많다.



강효진씨의 기마인물토기
‘두산도예’ 강효진씨가 금관가야인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기마인물토기를 재현한 작품.
강효진씨의 가야토기
가야토기의 명인 ‘두산도예’ 강효진씨가 재현한 작품들.
강효진씨가 작품
‘두산도예’ 강효진씨가 만든 수많은 작품들이 그의 작업실에 한가득 쌓여있다.


“분청도자기를 만들다 문득 가야토기를 재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해가 가야의 중심이었고, 그들이 사용했던 토기가 지금은 그 명맥이 끊어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자료를 찾아 재현에 들어갔습니다.”

강씨는 오래된 고서연구와 진품이 전시된 전국의 박물관을 방문해 확인하는 등 동분서주하며 가야토기 재현에 심혈을 기울였다.

“가야토기에 대한 자료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왜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그릇을 만들었는지, 또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 명백히 밝혀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박물관에서조차 역사적 가치에 대한 자료만 있을 뿐 제작방법은 전혀 알려진 게 없다 보니 혼자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씨의 이런 고민은 당연한 것이었다. 가야토기는 지금까지 어떤 흙을 쓰고 어떻게 빚어 구워내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가야토기는 2~6세기 낙동강 유역인 가야에서 만들어진 토기로 650년경 가야 멸망과 함께 사라졌으며 뿔잔, 이형토기 등 일부가 전해온다. 특히 전통가마인 등요(登窯)에서 1250도의 고온에서 4~10일 간 구워야 하므로 제작과정이 복잡하고까다롭다.

“기마인물현상에 대한 자료는 더욱 없습니다. 때문에 정확하진 않지만 승리를 상징하는 잔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왕이나 장수가 뿔잔에 술을 담아 승리를 기원했을 것 같습니다.”

강씨가 재현하는 기마인물형토기는 나팔모양으로 된 굽다리접시위에 사각형의 판을 설치한 뒤 기마인물 형상을 올리는 방식이다. 특히 말의 둔부에 뿔잔이 위로 솟아 있는 게 특징이며, 이는 국보 제91호인 신라의 도제기마인물상과 견줄 정도로 가야의 대표적 유물이다.





강효진씨 작품
‘두산도예’ 강효진씨가 빚은 그릇들이 가마에 들어가 전 건조되고 있는 장면.
강효진씨 작품
‘두산도예’ 강효진씨가 빚은 도자기들이 가마에서 구워지기 전 모습
강효진씨 작품들
가야토기의 명인 ‘두산도예’ 강효진씨가 재현한 작품들.


“가야토기 한 개를 만드는데 꼬박 하루가 걸립니다. 지금까지 만든 토기가 1000개가 넘지만 그중 제대로 나온 것은 3분의 1이 안됩니다. 처음에는 성공률이 10% 미만이었습니다. 제작이 어렵지 않은 도자기가 있겠습니까만 가야토기는 비교가 안될 만큼 힘듭니다.”

강씨의 가야인들의 숨결을 찾으려 쏟은 이런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20년 전 김해시 가야토기 공모사업에서 1등을 차지했다. 두산도예는 ‘가야토기 재현 전문업체’로 지정돼 있다.

그의 기마인물상은 작품성이 뛰어나 김해시가 외국을 방문하거나 주요 손님이 김해를 찾을 때 특별한 선물로 주고 있다.

강씨는 지금도 시간이 될 때마다 진품이 전시된 박물관을 찾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평생 도자기와 함께한 강씨는 명인의 반열에 올랐지만, 아직도 흙과 불을 제대로 알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김해의 흙과 불로 진품에 가까운 토기를 재현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마지막 꿈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과 에너지를 품은 흙, 흩어지는 흙 기운을 하나의 덩어리로 모으는 물, 흙 반죽으로 도자기를 빚어내는 장인의 손길, 그리고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는 가마. 이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야 탄생하는 작품인 도자기. 온 마음을 다해 도자기를 빚어낸 장인은 가마에 불을 넣을 때 경건해진다.

그들은 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이제는 신의 손길인 ‘불’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기다릴 뿐이다.” 도자기는 이렇게 정성을 다한 장인의 손길 위에 불의 기운이 닿아 탄생한다.

박준언기자

강효진씨의 작품들
가야토기의 명인 ‘두산도예’ 강효진씨가 재현한 작품들.
강효진씨의 가여토기 명인 인증서
‘두산도예’ 강효진씨 가야토기 명인 인증서
'두산도예' 강효진씨와 부인 고재인씨
‘두산도예’ 강효진씨와 부인 고재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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