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1.05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차 제작장에는 을씨년스러운 냉기만 감돌았다. 그곳 분지를 에워싼 산의 나무들은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설 채비를 하는 듯 나뭇잎을 몇 개 달고 있지도 못했다. 세월과 인생의 무상감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하물며 난리를 겪고 있는 중이니 그 허허로움의 두께가 오죽하랴.

“정말 우리가 이대로 주저앉아야 되겠소?”

뱀의 몸통같이 차갑고 매끄럽게 느껴지는 대나무더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정평구가 한숨 섞어 말했다. 보묵 스님 앞에서는 큰소리쳤던 그도 거듭되는 실패에 보기 민망할 정도로 탈기한 모습이었다.

“불가능한 일을 무리하게 시작한 것이 화근인 것 같…….”

조운은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까칠한 얼굴 곳곳에는 작업 도중에 입은 생채기가 실거머리처럼 보기 흉하게 나 있었고, 우두커니 선 채로 거기 찬기운 끼치는 공터에 버려지다시피한 미완성의 비차를 멍하니 바라보는 눈빛에서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시험비행 동승자를 구할 수 없다는…….”

탄식하는 정평구 얼굴과 손등에도 상처 자국이 선명했다.

“지금이 전시(戰時)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그럴 사람을 찾아…….”

둘님과 상돌의 역할을 대신해 줄 두 사람이 필요했다. 2차 시험비행에 실패한 후 그들이 나눈 대화는 이러했다.

“강형하고 나하고 두 사람만 타고 나는 데는 성공했으니, 여기서 일단 마무리를 짓는 게 어떻겠소?”

“그렇게 되면 기체(機體)가 너무 가벼워져 작은 바람도 이기지 못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거나, 쉽게 뒤집힐 위험이 크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아니 할 말로, 자칫 조선군이 있는 성 안이 아니라 밖에서 성을 포위하고 있는 왜군 진지로 가서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그게 아니면, 순식간에 남강이나 뒤벼리 벼랑에 거꾸로 곤두박질을 칠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너무 가벼운 재료를 썼다는 게 비차의 최대 취약점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돌이나 쇠를 가지고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나중에 항공 기술이 더 발달되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시간이 없지 않소? 완벽한 비차를 꿈꾸기에는 지금 우리 처지가 너무나 긴박하다, 그 말이오.”

“급한 마음에 섣불리 그분을 태웠다가 추락사고라도 나면요?”

잘린 대나무, 조각 난 무명천, 찢겨진 화선지, 빠져 나간 소나무 바퀴, 짧은 마끈 같은 비차 재료들이 주검의 냄새를 풍기며 공터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들에서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죽음의 팔을 베고 널브러져 있는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