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니홍조(雪泥鴻爪)
설니홍조(雪泥鴻爪)
  • 경남일보
  • 승인 2014.11.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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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법학박사, 전 진주·창원 경찰서장)
강선주
내 나이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 공자는 이 나이를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용하면서도 분별력을 잃지 않는 연륜의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이가 되면 버릴 것은 버리고 내려놓을 것이 있으면 내려놓고, 마음의 평정과 평안함을 즐겨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만약에 이 나이가 되어서도 매사에 불끈대고 목에 핏대를 올리며 세상을 살아간다면 설익은 청장년의 혈기가 남아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이때가 되면 ‘남들은 저리 이루어 놓은 것이 많은데, 저리 잘사는데’ 하며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겉보기에 나보다 훨씬 가진 것이 많고 잘사는 사람들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남모를 고통이 있고, 남모를 근심걱정을 안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나고 보면 높은 직위의 사람이나 낮은 직위의 사람이나, 많이 가진 사람이나 적게 가진 사람이나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고 간다. 잠자고, 밥 먹고, 술 마시고, 늙고, 병들고, 그리고 북망산 갈 때 빈손으로 가는 것도 다 똑같다.

유병언의 죽음을 보자. 일생동안 온갖 부조리를 동원해서 재산을 긁어모아 좋은 음식만 골라 먹고 명품만으로 치장한 귀하디귀한 몸뚱이를 인적도 드문 산속의 풀밭에 썩어 문드러지도록 돌보는 이 하나 없이 쓸쓸히 버려두고 가야만 하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허망하지 아니한가. 문득 ‘설니홍조((雪泥鴻爪)’라는 소동파(蘇東坡)의 시구가 떠오른다.‘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 정처없는 우리 인생 무엇과 흡사한가? 기러기가 눈밭 위에 잠시 앉았다 가는 것과 같으니, 어쩌다 발자국을 남긴다 할지라도 기러기 날아간 뒤 그 행방을 어찌 알겠는가?

인생의 허망함과 덧없음을 비유할 때 자주 인용하는 시구이다. 인간의 아등바등 한평생이 눈 위에 난 기러기 발자국과 같다는 것이다. 눈 위에 기러기가 앉았던 보잘것없는 흔적은 바람이 불면 곧 무산되어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잘난 사람도 돈 많은 사람도 지위 높은 사람도 영원할 수 없다. 그래서 너무 아등바등할 것도 없다. 그저 비우고 내려 놓으면서 한 땀 한 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강선주 (법학박사, 전 진주·창원 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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