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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플러스 <102>함양 대봉산일제강점기 괘관산 이름 대신 새 이름 얻은 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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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4  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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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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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들바람에 지친 나뭇잎이 허공을 날아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가지에 달렸을 때 화려하고 창창했던 붉은빛은 퇴색됐지만 대지는 온통 낙엽으로 융단을 깔아놓은 듯했다. 붉은빛이 남은 마지막 나뭇잎이 그 갈색계열의 융단 위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나뭇잎을 떨궈 낸 늙은 나무는 비를 맞은 장승처럼 처연하고, 그 사이로 빗속의 안개가 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 한철 이곳에 푸름이 있었던가. 계절은 겨울의 침묵 속으로 잦아든다. 화려한 시절의 여운과 아쉬움을 남기고…. 함양 지소마을을 품고 있는 대봉산의 가을 흔적이다.

대봉산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 옆에 있다. 산행 들머리로 많이 활용하는 원통재 일명 ‘빼빼재’는 함양군 백전면과 서하면의 경계로 백두대간 상에 있다. 북서쪽은 백운산(1278m)이며, 대봉산은 백운산 대간에서 분기한 산이다.

진주방향에서 통영∼대전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육십령터널을 벗어나면 곧바로 양쪽에 눈에 띄는 암봉 2개가 나온다. 오른쪽 암봉이 황석산, 왼쪽이 대봉산이다.

얼마 전까지 이 산을 괘관산(掛冠)이라고 부르고 최고 1봉을 천황봉으로 불렀다. 일제 때 지어진 이름으로 괘관은 ‘벼슬을 마친 선비가 갓을 벗어 벽에 걸어 놓았다’는 뜻으로 함양지역에 큰 인물이 나지 못하게 붙인 이름이며 천황은 일본 천황을 말한다.

함양군에서 이를 토대로 개명 신청했고 국토지리정보원이 받아들여 2009년 4월 공식 산이름을 ‘대봉산’으로, 제1봉을 천왕봉(1228m), 제2봉을 계관봉(1253m)으로 바꿨다. 대봉은 ‘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 계관은 ‘닭 벼슬 형상’ 을 뜻한다.

▲지소마을 민재여울목산장→갈림길→왼쪽 함양 산림경영 모델 숲→왼쪽 능선→1054m 헬기장 계관봉 주능선 합류→계관봉(대봉산 2봉)→천왕봉(대봉산 1봉)회귀→사거리갈림길→지소마을 원점회귀. 휴식 없이 총 11km, 4시간 20분 소요.

▲오전 9시 22분, 지소마을의 민재여울목산장 앞에서 출발한다. 100m 정도 오르면 좌우로 갈림길이다. 오른쪽 대봉산 안내도와 ‘천왕봉 3.7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는 곳이 취재팀의 날머리이며 왼쪽길이 들머리다.

인적이 드문 시멘트 임도를 따라 오르면 함양군에서 경영하는 모델 숲이 나온다. 철문으로 돼 있어 군에 허가를 얻어야 한다. 행복예찬 숲에는 가죽과 앵도나무, 초피, 옻나무 두릅, 고로쇠나무가 식재돼 있고, 풍류여행 숲에는 모과, 느릅나무 오가피, 오미자 음나무 구지뽕이 식재돼 있다. 이 외 건강예감 숲에는 마가목 헛개, 석류나무가 자라고 있고 풍류쉼터, 비타민쉼터가 조성돼 있다.

원통재에서 계관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합류하기 위해선 남으로 흘러내린 두개의 능선 중 하나를 타고 올라야 한다. 왼쪽능선은 산을 돌아 임도 끝까지 가면 비교적 좋은 길로 주능선과 합류할 수 있다. 오른쪽 다른 능선은 비타민쉼터에서 임도로 향하지 않고 곧장 오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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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쌓이고 안개가 끼어 꿈결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봉산길. 준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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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취재팀은 후자 비알길을 택했다. 길이 선명치 않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반면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어서 원시림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발 1시간30분 만에 지소마을 뒷산 주봉 주능선에 합류한다. 해발 1054m로 넓은 헬기장이 위치하고 있다. 왼쪽은 감투산 원통재로 이어지는 길이며, 오른쪽이 계관봉 천왕봉 가는 길이다. 안개 속에 계관봉이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가 이내 사라져 버린다. 능선에선 강한 비와 함께 더욱 세찬 바람이 얼굴을 후려친다. 2년 전 이 산에 왔을 때도 강한 바람 때문에 힘든 산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정상부근의 계관봉에 흰 눈이 내렸고, 이번에는 안개투성이었다.

두 번째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삼거리로 오른쪽에 난 길이 산 아래에서 갈라져 올라온 또 하나의 능선길이다. 헬기장은 사용한지가 오래돼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쐐기풀과 잡초를 무성하게 키우고 있다. 산엘 오르면 산 정상마다 촘촘히 조성돼 있는 헬기장을 볼 수 있는데 과연 효율성이 있는 것인지 항상 궁금해진다. 산을 훼손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시설물이다. 활용도가 낮은 헬기장을 원래대로 돌려 놓는 작업도 신중히 고려해 볼 만한 일이다.

오전 11시 25분, ‘빼빼재 3.8km 천왕봉 1.7km’를 가리키는 이정표. 1157m의 대봉산 9부 능선까지 고도를 높인다.

9부 능선 이후에는 싸리와 억새가 주인이다. 다시 한 봉우리를 더 올라서면 이번에는 무인통신시설이 버티고 있다. 대형 안테나는 아니라도 눈에 거슬린다. 곧바로 갈림길, 왼쪽 300m를 더 진행하면 암봉으로 된 제2봉 계관봉이다. 비와 안개로 전망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대전∼통영고속도로 육십령고개 너머에 황석산, 거망산이 보인다.

산 아래 운곡리에는 수령 800년의 할아버지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마을로 불린다. 나무의 허리둘레가 양팔을 벌려 다섯번 반, 둘레 9.5m에 높이 30여m가 된다고 했다. 마을지형이 풍수학적으로 배를 닮았는데 주민들은 이 나무가 돛대역할을 해 마을을 지켜준다고 여기고 보호하고 있다. 정월 초하룻날 정성을 모아 당제를 지내고 있다.

계관봉에선 반환해야 천왕봉으로 갈 수 있다. 1111m까지 한껏 고도를 낮춘다. 주변에는 산죽이 주류를 이룬다. 산행 내내 내린 비로 뻘층이 형성돼 미끄러져 나동그라지기를 반복한 뒤에야 중산·지소마을 사거리재에 닿는다. 데크 설치 등 지자체의 등산로 정비가 아쉬운 대목이다. 왼쪽 5.3km를 내려가면 중산마을이고 오른쪽길이 출발지이자 날머리인 지소마을이다.

천왕봉엘 가기 위해선 다시 치올라야 한다. 이번에는 고목의 철쭉지대다. 정상 200m 못 미친 지점에서 마평마을로 떨어지는 갈림길이다. 마평은 4.3km아래에 있다.

낮 12시 30분, 천왕봉까지는 드센 마지막 오름길. 정상에 누군가 정성스럽게 돌탑을 쌓아 놓았다. 붉은 글씨가 눈길을 끄는 정상석의 높이가 족히 2m는 돼 보인다. 천왕봉의 실제 높이는 1228m로 계관봉 1253m보다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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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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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산기슭의 낙엽길.


천왕봉이란 명칭이 국가 공식지명으로 인정받은 것은 지리산과 계룡산에 이어 대봉산이 세 번째이다. 최근에는 경북 비슬산 정상도 천왕봉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됐다.

산은 여전히 안개와 구름 속에 가렸다. 맑은 날 사방의 풍경이 좋은 곳이다. 가깝게는 2∼3시간 동안 진행한 산세를 온전히 볼 수 있다. 육산 감투산과 암봉인 계관봉의 대비가 조화를 이룬다. 멀리로는 걸출한 산들이 호위하고 있다. 남쪽 천왕봉에서 엉덩이 모양 반야봉까지 지리산을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작은 천왕봉에서 큰 천왕봉을 볼 수 있는 지역이다.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함양 백운산 정북에 덕유산, 동쪽에 황석·거망산의 산세가 굽이친다. 돌아보면서 한번 확인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다시 회귀해 중산·지소마을재에서 지소마을방향으로 내려선다. 참나무 산뽕나무 도토리나무 때죽나무 활엽목이 지천이다. 고도를 좀 더 낮추면 단풍나무가 주류다.

어느새 가을은 이 산을 휩쓸고 지나가 버렸다. 가을의 속도보다 겨울이 먼저 온 자리에 된서리를 맞은 나뭇잎이 제 빛깔을 내기도 전에 말라서 떨어져 버렸다. 브라운 카펫이 깔린 몽환의 길을 한동안 걷고, 또 두세 차례 개울을 건너간다.

오후 1시 15분, 천왕봉에서 1.9km 내려온 지점에 돌로 쌓은 집터. 산막으로 보이는데 오래전 화전민이나 산일을 하던 사람들이 늦은 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을 기댄 흔적이다.

1000m 높이에서 시작된 작은 물줄기는 어느새 개울을 만들고 계곡을 만들어 폭포까지 형성했다.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 암반에 깔린 낙엽, 물소리, 바람소리 앙상블이 가을 대봉산을 울린다. 시계는 1시40분을 가리켰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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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관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상고대. 왼쪽 봉우리 너머에 계관봉이 숨어 있고 정면의 봉우리가 천왕봉이다.
사진은 2012년 늦겨울 촬영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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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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