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1.1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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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2. 막다른 길이오
‘약간 정신이 온전치 못하긴 해도, 심성이 착한 듯하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고운데, 자폐증에다 말까지 못 하는 저런 상거지와…….’

그러나 그야말로 조운을 심한 충격에 빠뜨린 것은 얼핏 눈에 들어온 광녀의 배였다. 회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 사이. 이럴 수가? 불러 있다. 아직은 크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했다. 광녀가 임신을 하다니! 아이 아버지가 누구란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잠자코 광녀와 걸인의 실랑이를 바라보고만 있던 정평구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린 것은 그때다. 놀란 건 조운만 아니었다. 광녀와 걸인도 느닷없이 터져 나온 그 웃음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평구는 한참 더 웃고 나서,

“정말 기쁜 일이 아니오? 전쟁 중에 반가운 손님을 둘이나 맞이했으니 말이오. 하늘이 보내신 사람들 아니겠소?”

그 순간, 조운은 재빨리 머리를 스치는 어떤 예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정평구의 저 말과 웃음 속에 담겨 있는 의미…….

‘아니다! 그건 아니다!’

조운은 발작처럼 생각했다. 정평구 말에는 몽니가 박혀 있다. 광녀와 걸인이 아무리 못나고 버림받은 인생들이라 해도 목숨은 똑같이 소중한 것,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순 없다.

‘저들이 정신적으로 온전한 사람들이라면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해서, 다행히 응해 주겠다고 하면 행해 볼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하지만 아니다. 어떤 판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정신장애자들을 우리 마음대로 저 위험천만한 일에 끌어들여 종처럼 부려먹을 수는 없다는 양심의 소리가 가슴을 쳤다.

‘실패할 확률이 성공할 확률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이미 한 번 경험했지 않으냐. 그때나 지금이나 비차 자체에는 달라진 것도 없다. 다만 그때 일어났던 회오리바람이 없기를 바랄 뿐. 하지만 기상조건이 더 나아지리란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그건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다. 이번에는 부상 정도가 아니라 모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지난번에도 추락하면서 나무 꼭대기에 먼저 걸려 충격이 크게 완화되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비차가 산산조각이 났거나 불이 붙었을 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랬었다면 결국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뇌진탕으로 즉사했거나 불에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을 것이다.’

조운의 생각을 그런 방향으로 몰아간 것은 무엇보다도 광녀의 임신이었다. 그는 당장 떠올렸던 것이다. 아내 둘님의 유산. 세상 빛을 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스러져야 했던 가련한 생명. 태아를 그렇게 만든 부모의 죄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것을. 그랬다. 똑 같은 죄악을 두 번이나 반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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